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81
한자 時興驛
영어공식명칭 Siheung Station
이칭/별칭 이흥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 시흥역 폐지

[정의]

조선시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개설]

시흥역(時興驛)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에 있던 역이다. 역촌리는 역말, 삼거리, 장터 등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말은 조선시대 시흥역이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마을 이름이 ‘역말’이다. 시흥역은 시흥도(時興道)의 중심 역으로 역승(驛丞)이 파견되어 시흥도 내 여러 역을 관리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역은 공문서 전달, 출장자 지원, 죄인 압송, 통행인 규찰 등을 목적으로 만든 교통 통신 기관이다. 시흥역은 예산과 평택을 연결하는 시흥도의 중심 역이었으며, 시흥역승(時興驛丞)의 관리 아래 있었다.

[관련 기록]

시흥역에 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온양군읍지』, 『여도비지(與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용]

『세종실록지리지』 「온수현조(溫水縣條)」에 "역이 하나이니, 시흥이다. 옛날에는 이흥(理興)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온양군조(溫陽郡條)」에 "시흥역은 옛날에는 이흥역이라 불렀는데, 읍 남쪽 8리[약 3.2㎞] 지점에 있으며 승(丞)이 있다."라고 각각 기록되어 있다.

『온양군읍지』에 "시흥역은 군 남쪽 10리[약 4㎞]에 있다. 역마(驛馬) 11마리, 역노(驛奴) 8명, 역비(驛婢) 4명이다.", 『여도비지』「온양군 역도조(驛道條)」에 "시흥역은 관아의 남쪽 8리에 있다.", 『대동지지』에 " 시흥역은 남쪽 8리에 있다. 옛날에는 이흥이라 하였다."라고 각각 기록되었다.

[변천]

고려시대 충청주도(忠淸州道)에 속하는 장세역(長世驛)[장시역(長時驛)], 이흥역(理興驛), 일흥역(日興驛)을 조선 전기에 개편하여 시흥도로 만들고 시흥역을 소속시켰다. 시흥역은 시흥도의 중심 역으로 종9품 역승이 파견되어 관할 역을 관리하였다. 시흥도에는 일흥역[현재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 창덕역(昌德驛)[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창암리], 시흥역[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장시역(長時驛)[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역리], 화천역(花川驛)[현재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추팔리]이 속해 있었다. 17세기경 시흥도가 금정도(金井道)[중심 역은 금정역(金井驛)으로 현재 충청남도 청양군 남양면 금정리에 있었음]에 통합되면서 시흥역도 금정도 소속 역이 되어 금정찰방(金井察訪)의 관리를 받았다. 1896년(고종 33) 역원제가 폐지되면서 없어졌다.

[의의와 평가]

시흥역은 예산, 아산, 평택을 연결하는 시흥도의 중심 역이었다. 시흥도는 안성을 거쳐 한양에 이르는 양재도(良才道)로 진출할 수 있어 충청도 서부 해안지역과 중앙을 연결하는 도로로 기능하였다. 시흥역 주변에는 송악면 외암리, 송악면 마곡리 등 역의 말을 먹이던 장소와 오양골, 마실 등 연관된 지명이 산재해 있다. 이는 조선시대 시흥역이 주변 지역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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