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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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時興驛 |
영어공식명칭 | Siheung Station |
이칭/별칭 | 이흥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범 |
조선시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시흥역(時興驛)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에 있던 역이다. 역촌리는 역말, 삼거리, 장터 등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말은 조선시대 시흥역이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마을 이름이 ‘역말’이다. 시흥역은 시흥도(時興道)의 중심 역으로 역승(驛丞)이 파견되어 시흥도 내 여러 역을 관리하였다.
역은 공문서 전달, 출장자 지원, 죄인 압송, 통행인 규찰 등을 목적으로 만든 교통 통신 기관이다. 시흥역은 예산과 평택을 연결하는 시흥도의 중심 역이었으며, 시흥역승(時興驛丞)의 관리 아래 있었다.
시흥역에 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온양군읍지』, 『여도비지(與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온수현조(溫水縣條)」에 "역이 하나이니, 시흥이다. 옛날에는 이흥(理興)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온양군조(溫陽郡條)」에 "시흥역은 옛날에는 이흥역이라 불렀는데, 읍 남쪽 8리[약 3.2㎞] 지점에 있으며 승(丞)이 있다."라고 각각 기록되어 있다.
『온양군읍지』에 "시흥역은 군 남쪽 10리[약 4㎞]에 있다. 역마(驛馬) 11마리, 역노(驛奴) 8명, 역비(驛婢) 4명이다.", 『여도비지』「온양군 역도조(驛道條)」에 "시흥역은 관아의 남쪽 8리에 있다.", 『대동지지』에 " 시흥역은 남쪽 8리에 있다. 옛날에는 이흥이라 하였다."라고 각각 기록되었다.
고려시대 충청주도(忠淸州道)에 속하는 장세역(長世驛)[장시역(長時驛)], 이흥역(理興驛), 일흥역(日興驛)을 조선 전기에 개편하여 시흥도로 만들고 시흥역을 소속시켰다. 시흥역은 시흥도의 중심 역으로 종9품 역승이 파견되어 관할 역을 관리하였다. 시흥도에는 일흥역[현재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 창덕역(昌德驛)[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창암리], 시흥역[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장시역(長時驛)[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역리], 화천역(花川驛)[현재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추팔리]이 속해 있었다. 17세기경 시흥도가 금정도(金井道)[중심 역은 금정역(金井驛)으로 현재 충청남도 청양군 남양면 금정리에 있었음]에 통합되면서 시흥역도 금정도 소속 역이 되어 금정찰방(金井察訪)의 관리를 받았다. 1896년(고종 33) 역원제가 폐지되면서 없어졌다.
시흥역은 예산, 아산, 평택을 연결하는 시흥도의 중심 역이었다. 시흥도는 안성을 거쳐 한양에 이르는 양재도(良才道)로 진출할 수 있어 충청도 서부 해안지역과 중앙을 연결하는 도로로 기능하였다. 시흥역 주변에는 송악면 외암리, 송악면 마곡리 등 역의 말을 먹이던 장소와 오양골, 마실 등 연관된 지명이 산재해 있다. 이는 조선시대 시흥역이 주변 지역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