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176
한자 城內里
영어공식명칭 Seongna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아산군 영인면 성내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충청남도 아산군 영인면 성내리에서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6.75㎢
가구수 199가구[2019년 1월 31일 기준]
인구[남/여] 534명[남 284명, 여 250명][2019년 1월 31일 기준]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성내리(城內里)는 성내1리, 성내2리, 성내3리로 이루어지며, 영인면소재지로부터 4㎞ 정도 떨어진 영인면 동쪽 끝 마을로 성내저수지를 이용한 수리시설이 잘 정리되어 농사짓기가 편리하다.

[명칭 유래]

‘성내리’라는 명칭은 1914년 금성리(金城里)와 내동(內洞)을 병합할 때 두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붙인 것이다.

[형성 및 변천]

성내리는 본래 아산군 일북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성리, 도곡리(道谷里), 내동을 병합하여 성내리라 하고 아산군 영인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하여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성내리 북쪽으로는 고용산과 남쪽으로는 금산이 있고, 쇠재와 안골 사이에 성내저수지와 고룡산로가 지나고 있다. 또한 성내저수지 상류와 하류로 너른 농경지가 있으며 논밭이 고루 분포된 전형적인 농산촌 마을이다. 영인면소재지로부터 4㎞ 정도 떨어진 영인면 동쪽 끝 마을로 남으로는 음봉면 신수리산정리, 동쪽으로는 음봉면 신정리, 북으로는 영인면 신봉리, 서쪽으로 영인면 신화리와, 역리, 아산리와 접해 있다.

[현황]

성내리의 면적은 6.75㎢이며 2019년 1월 기준 인구는 199가구에 총 534명으로 남자가 284명, 여자가 250명이다. 성내1리, 성내2리, 성내3리의 3개 행정리로 이루어지며, 안골[내동(內洞)], 돗질[도곡개], 쇠재[금성(金城)]의 자연마을이 있다. 성내1리인 쇠재는 예로부터 질그릇을 파는 상점과 쇠를 다루는 장인들이 있어서 부르던 이름이라고 하며, 성내2리인 안골은 아술, 음봉현의 읍지였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돗질은 정확한 유래를 모르나 마을에 집단 거주한 지가 오래되지 않고 아마도 질그릇 파는 상가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성내1리인 쇠재는 고용산을 등지고 남녘에 자리잡은 마을로 양지바르고 풍광이 좋아 전원마을로 각광받고 있으며 많은 신축 주택이 들어서 유입인구가 많다. 또한 성내저수지를 만들 때 길가에 있던 11기의 비석을 마을 입구로 옮겨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고 있다. 성내2리인 안골은 금산을 뒤로 하고 마을 앞 북쪽으로 성내저수지가 있어 역시 전원마을로 인기가 있어 유입인구가 많으며, 최근에는 주한미군과 군속들을 위한 신축 주택단지가 곳곳에 들어서서 이국적인 마을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성내3리인 돗질에는 장애인 복지시설인 성모복지원이 들어서 있으며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연속 4년간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된 살기 좋고 인심 좋은 마을이다.

성내1리 쇠재에는 신영윤씨인 윤자임이 500여 년 전 낙향하여 그 후손들로 이어져 왔으며, 예안이씨인 이진행의 후손도 살고 있고 있다. 온양정씨도 살았었으나 지금은 없다. 안골에는 순흥안씨가 400여 년간 살아왔으나 지금은 모두 떠나고 없으며, 김해김씨전주이씨 등이 살고 있고, 조선시대 아산현감을 지낸 토정 이지함에 관한 설화가 많으며 ‘토정샘’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돗질에는 100여 년 전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돗질에는 안성천 이남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성내산성이 있다. 성내산성은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약 410m에 이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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