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세금으로 바쳐진 곡식의 수송 및 보관을 위해 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설치했던 창고. 공세곶창(貢稅串倉)은 충청도의 세곡을 모아 보관하였다가 서울로 운송하는 역할을 하던 조선 전기 전국 9대 조창(漕倉) 중 한 곳으로 공세곶이[貢稅串], 공세창(貢稅倉), 공진창(貢津倉), 아산창(牙山倉)이라고도 불렸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기록된 9개 조창은...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바다가 육지 안으로 들어와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아산호·삽교천·곡교천을 따라 형성된 만.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내포는 ‘바다나 호수가 육지 안으로 휘어 들어간 부분’으로, 아산호·삽교천·곡교천을 따라 형성된 만(灣)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이후부터는 특정한 지역인 충청남도의 서북부 지역을 의미한다. 내포의 범위를 추측할 수...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동학사상과 항일민족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많은 사람이 기포(起包)[동학농민운동 때 농민 등이 동학의 조직인 포(包)를 중심으로 하여 봉기(蜂起)하던 일]에 참여하였던 곳이며, 천도교로 개칭한 이후 후손들은 3·1운동 등 민족운동을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동학과 천도교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
충청남도 아산시·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 사이[한반도 중부]에 자리하며, 조차가 크고 만입의 깊이가 깊어 고대 이래로 국내외 지역과 다양한 형태로 문물이 교류되는 만. 한반도 중부에 자리 잡은 충청남도 아산만은 서해안에 발달한 수많은 만 가운데 특히 만입의 깊이가 깊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만이다. 만의 입구인 충청남도 당진의 한진(漢津) 부근에서 가항종점(可航終...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선창리 삽교천 하안에 있던 나루이자 포구. 선장나루는 삽교천 양안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나루였으며 동시에 내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내륙 수로 역할을 하는 포구였다. 선장나루 일대는 삽교천 하류의 감조 구간[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구간]이어서 하천의 폭이 상당히 넓었으므로 하천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하였다. 선장나루에서 서쪽으로 삽교천을...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친일 행적을 벌인 유생. 성낙현(成樂賢)[1868~1935]은 경학원(經學院) 충청남도 강사(講士)로 1912년부터 1935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성낙현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희성(希聖), 호는 죽사(竹似)이다. 1868년(고종 5) 아산 신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갑영(成甲永)이다. 성낙현은 18...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조선시대 공세곶창[공진창] 유적. 아산 공세곶고지는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93-1번지에 있다. 국도 39호선[아산로]의 공세교차로에서 서쪽으로 600m 정도의 지점이다. 공세곶(貢稅串)은 영인산 북서쪽 산줄기의 입암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신풍산 북쪽에 거북 목처럼 작은 봉우리로 형성된 곶이다. 내륙 깊숙이 형성된...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동학 지도자. 1894년(고종 31) 10월 홍주성(洪州城)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동문 밖에서 참살당했다. 이신교(李信敎)[1840~189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회안대군파(懷安大君派) 17세손이다. 입향조인 13대조 이사눌(李思訥) 이후 약 400년간 세거해 온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용화리[지금의 아산시 용화동]에서 태어나고 거주하였다...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장곳리에 있던 포구. 장포(獐浦)는 ‘노루지’를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하천이 들 가운데로 깊이 들어가 있어서 마치 노루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노루고지’라고 하였으며 점차 ‘노루지’로 변하였다. 장포는 아산 지역 관내에 있던 삽교천 유역의 포구 가운데 가장 상류에 있던 포구였다. 고려시대에는 1391년(공양왕 3)에 장포에 성을 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