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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82
한자 尹龍周
영어공식명칭 Yun Yongju
이칭/별칭 현천(玄天),성첨(聖瞻),이민하(李敏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동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병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4년 1월 29일연표보기 - 윤용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 윤용주 대동단 가입 및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2월 7일 - 윤용주 정치범 처벌령, 출판법, 보안법, 사기 등으로 3년형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9년 8월 18일연표보기 - 윤용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윤용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동산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독립운동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동산리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개설]

윤용주(尹龍周)[1884~1949]의 아호는 현천(玄天) 또는 성첨(聖瞻), 이명은 이민하(李敏河)이다. 일찍이 대한독립의군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경성[서울]에 올라가 전협 등이 조직한 대동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대동단 활동을 통해 단원 및 자금 모집에 진력하였다.

[활동 사항]

윤용주는 일찍이 한학을 공부하였고 대한독립의군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의군부는 의병 활동을 하다가 대마도에 유배되었던 안병찬이 1912년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아 결성한 비밀결사 단체로, 전국의 의병장과 유생들이 참여하였다. 1919년 5월 경성에 올라가 대동단의 전협, 최익환 등과 교류하고 이후 본 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윤용주는 대동단의 활동 방략으로 무장투쟁론을 주장하여, 구체적 대안으로 첫째 오강(五江)의 석전패와 상여군을 포섭할 것, 둘째 보병대의 무기고를 탈취할 것, 셋째 서대문 감옥을 폭파할 것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제안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당분간 지하 문서의 제작과 배포에 주력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이후 윤용주는 단원 모집과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주력하였다. 전라북도 정읍 사람으로 독립의군부를 이끌었던 임병찬의 아들 임응철과 김재구, 강경진 등을 대동단에 가입시켰다. 이 외에 한학 선생인 이규문과 친우 전복규의 집에서 대동단의 단장인 전협의 만남을 주선하여, 이들에게 대동단의 신임장을 교부하여 자금 모집에 힘쓰도록 하였다. 또한 세간에 알려진 ‘이강공 탈출 미수 사건’에도 가담하는 등 대동단의 핵심 인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런 활동을 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범 처벌령, 출판법, 보안법, 사기 등으로 3년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인 1949년 8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윤용주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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