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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86
한자 李邕
영어공식명칭 Lee Ong
이칭/별칭 조은(釣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석곡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남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고려 말 - 이옹 문하시중 역임
활동 시기/일시 조선 초 - 이옹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석곡리에 은거
거주|이주지 은거지 -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석곡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신단비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
성격 문관
성별
본관 경주
대표 관직|경력 문하시중

[정의]

고려 후기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석곡리에 은거한 아산이씨의 입향조.

[개설]

이옹(李邕)은 고려 말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으며,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좌상(左相)으로 불렀으나 아산의 석교(石橋)[현재 둔포면 석곡리]에 은거하였다.

[가계]

이옹의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조은(釣隱)이다. 이옹은 아산 지역 아산이씨(牙山李氏)의 입향조(入鄕祖)이다. 아산이씨는 경주이씨(慶州李氏)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로서, 경주이씨 6세손인 형부상서(刑部尙書),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를 지낸 이주좌(李周佐)를 시조(始祖)로 삼는다. 1400년(태종 2) 우정승으로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진 이서(李舒)를 중시조(中始祖)로 삼고 있다. 이옹의 후손은 감찰(監察)을 지낸 이천계(李天桂), 감정(監正)을 지낸 이천기(李天杞)가 있다.

[활동 사항]

이옹은 고려 말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역임하였다. 조선의 건국 이후 태조로부터 조정에 합류할 것을 세 차례나 권유받았으나, 고려의 재상으로서 조선의 건국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합류하지 않았다. 관직을 떠난 이옹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석곡리에 내려와 시와 낚시로 소일하며 여생을 보냈다. 이옹 스스로 지어 부른 자호(自號)인 ‘조은’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후손들은 이옹을 고려 말 충신으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 여말삼은(麗末三隱)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더불어 고려 말 충신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뚜렷한 생애 업적이나 궤적이 기록된 바는 전하지 않는다.

[묘소]

태어난 시기와 생을 마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후손들에 의해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에 문하시중 아산이씨 이옹의 신단비(神壇碑)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 『아산인물록』(온양문화원, 2008)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 인터뷰(아산이씨 사직공파 종회장 이용경, 남, 201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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