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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31
한자 金玉均先生遺墟
영어공식명칭 Historic Site Related to Kim Okkyun Seonsaeng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고균길 41[아산리 494-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2년 12월 3일연표보기 - 김옥균선생유허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2월 6일연표보기 - 김옥균선생유허 충청남도 기념물 제13-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옥균선생유허 충청남도 기념물 재지정
소재지 김옥균선생유허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고균길 41[아산리 494-2]지도보기
성격 묘와 제실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김옥균의 묘와 제실.

[개설]

김옥균(金玉均)[1851~1894]은 개화기의 개화파 인물로서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서 김병태(金炳台)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독립당을 조직하고 개화파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였다. 1884년(고종 21) 12월 급진적 개화를 위해 갑신정변을 단행하였던 인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김옥균의 봉분과 함께 묘비, 석등 등 김옥균선생유허가 조성되었다.

[변천]

김옥균이 1894년 능지처참을 당한 뒤 일본인 지인들이 김옥균의 의복과 머리카락 등을 몰래 수습하여 도쿄 아오야마[靑山] 공원묘지의 외국인 묘역에 안장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김옥균의 양자인 김영진(金英鎭)이 아산군수로 재임하던 1912년 일본 정부와 친일파 유혁로(柳赫魯)의 도움을 받아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의 산기슭에 옮겨 12월 3일 묘를 조성하였다. 김영진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 일본인 부인이 낳은 김옥균의 아들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족보에는 별도의 생부[김완규]가 기록되어 있다. 이장(移葬) 사실은 1912년 12월 3일 『매일신보』에 보도되었으며, ‘유골’이라 한 점이 의복과 머리카락 등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와 달라 눈에 띈다. 1914년 김옥균의 부인 유씨(兪氏)가 사망하자 합장하였다.

[위치]

김옥균선생유허는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고균길 41[아산리 494-2]에 있다. 영인산 북동쪽 산줄기 자락에 있으며 영인초등학교 정문 옆 여민루(慮民樓) 동남쪽 직선거리 220m 지점이다. 여민루에서 남서쪽으로 마을 길을 따라 약 400m 가면 도달한다.

[현황]

김옥균선생유허에는 봉분과 함께 묘비와 석등, 석양, 망주석, 문인석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최근에 제실이 건립되었고, 1976년 12월 6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3-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김옥균의 출생지인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38는 ‘김옥균 선생 유허’라는 동일한 명칭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급진개화파의 상징적 인물인 김옥균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충청남도 아산시는 김옥균의 출생이나 거주와는 관련이 없지만,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김옥균선생유허김옥균과 관련된 귀중한 유적이다. 또한 김옥균과 박영효의 ‘호위무사’로 알려졌고 일제강점기 친일파로 평가되는 유혁로와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져 우리나라 근대 역사와 관련하여 깊이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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