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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574
한자 慮民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20[아산리 412-2]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15년(태종 15)연표보기 - 여민루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73년 12월 26일연표보기 - 여민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여민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20[아산리 412-2]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겹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아산현 관아의 문루.

[위치]

여민루(慮民樓)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영인초등학교 입구인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20[아산리 412-2]에 있다.

[변천]

여민루는 충청남도 아산의 누정 가운데 현존하는 건물로서, 영인면 아산리 영인초등학교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 여민루는 1415년(태종 15)에 아산현감 최안정(崔安正)이 손님과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세웠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호정공(浩亭公) 하륜(河崙)의 권유로 정이오가 기문(記文)을 썼으며, 누의 이름은 하륜의 "백성을 위하는 뜻을 취하여 여민(慮民)이라 이름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는 의견을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의하면, 여민루는 객관 동편에 있다고 하였다. 1872년에 제작한 「아산현지도」에 의하면, 객관 남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정아주지(新定牙州誌)』의 기록에 의하면, "지금은 폐지되어 있고 이름만 남아 있으며, 정이오가 지은 기문이 있다"라고 한 것을 보면 이후에 재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조 때의 『여지도서(與地圖書)』에서도 아산현 공해조(公廨條)에 여민루 관련 기록으로 보아 현재의 건물은 1800년대 중반 이후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1578년(선조 11) 토정 이지함여민루 동쪽 약 800m 지점에 있던 아산 관아를 아산현감으로 부임하면서 지금의 영인초등학교 자리로 옮겼다. 관아의 문루로서 여민루의 취지에 맞춰 아산현걸인청(乞人廳)을 설립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기술을 가르쳐 주는 등 걸인, 노약자, 빈민 구제 등을 위해 노력하였다.

[형태]

여민루는 정면 7.1m, 측면 4.66m, 면적 33.08㎡로서, 낮은 기단 위에 방형의 초반석(初盤石)을 놓고 1.4m의 사각주형 장초석을 세운 뒤 원형 목조 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 누각으로 2층 문루(門樓)로 지어졌다. 아래층 3칸에 모두 문을 달아 출입하게 되어 있다. 측면은 판벽으로 막았고, 상층에는 마루를 만들어 사방을 개방하였으며, 북단 협칸에 층계를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정면에 ‘여민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여민루는 1970년대 한쪽 기둥이 썩어 붕괴 위험이 있어 헐릴 뻔하였으나, 영인국민학교 교장 윤직용과 기관의 협조를 얻어 보수 및 정비를 하여 온전한 상태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백성을 위한다는 뜻을 지닌 여민루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이다. 영인초등학교 정문에 있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는 귀감이 되며, 공직자들도 그 뜻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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