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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하양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63
한자 牙州河陽倉
이칭/별칭 경양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노양1리[계양(桂陽)]

[정의]

고려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조세 운송을 담당한 국영 창고.

[개설]

고려시대에 전국의 조세(租稅)를 13조창(漕倉)을 통해서 거두어 수도 개경[개성]으로 옮겼다. 13조창 중 하나가 아주 하양창(牙州河陽倉)이며 아주(牙州)의 편섭포(便涉浦)에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에 국가 운영을 위해 각 군현에서 세곡(稅穀)을 거두었다. 고려는 북방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을 13개 권역으로 나누어 중심 포구에 조창을 정하고 세곡을 징수 집결시켰다. 당시 청주목(淸州牧) 관내의 여러 군현의 조세를 개경으로 옮기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조창이 아주 하양창이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6의 충청도 직산현 고적(古跡) 경양폐현(慶陽廢縣) 내용에 "고을 서쪽 44리[약 17.3㎞]에 있다. 본래 고려의 하양창인데, 뒤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영(令)을 두고 염장관(鹽場官)을 겸임했으며, 본조[조선] 태조 5년[1396년]에 직산[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 예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고려시대에 전국의 조세를 13조창을 통해서 거두어 수도 개경으로 옮겼다. 이를 조운(漕運), 조운제라 하였다. 그 13조창 중 하나가 아주 하양창이었다.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및 천안시 등을 비롯하여 당시 청주목 관내의 여러 군현의 조세가 아주 하양창으로 집결되어 개경으로 옮겨졌다. 아주 하양창의 위치는 아산만 끄트머리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노양1리[계양(桂陽)] 일대로 비정되고 있다. 노양1리는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남리를 마주 보고 있는 곳이다. 노양1리와 신남리 사이에는 둔포천이 흐르고 있으며 고려시대 아주는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곡교천 북쪽 지대에 있었던 고을이었다. 그런데 당시 노양1리 일대까지 아주였던 것으로 추정되어 ‘아주 하양창’이라 지칭된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아주 하양창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됨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수도가 개경에서 한양[서울]으로 바뀌며 경기 지역 조세는 한양으로 직접 갔다. 여기에 더해 조선시대에 아주 하양창의 기능은 공세곶창(貢稅串倉)[공세창(貢稅倉)·공진창(貢津倉)·아산창(牙山倉)]으로 옮겨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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