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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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賜塘洑-慮氏祠堂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원평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소령 |
훼손 시기/일시 | 1963년 이후 - 국사당보와 노씨 사당 국사당보 예당저수지 수리 시설 완공으로 없어지고 노씨 사당 훼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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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국사당보와 노씨 사당 -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원평리 |
성격 | 보|사당 |
관련 인물 | 노씨 부인|김만진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에 있었던 조선 후기 건립된 국사당보와 김만진의 부인 광주노씨의 사당.
[개설]
국사당보와 노씨 사당은 농업용수를 공급하였던 국사당보(國師堂洑)와 국사당보를 조성한 김만진의 부인 광주노씨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건립 경위]
예산 지역에 조성된 조선시대 보로는 국사당보, 좌이천보, 돌천보 등이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국사당보는 국사봉 아래에 있어 국사당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예당저수지의 모체가 되는 무한천변의 보이다. 조선시대에도 10리가 넘는 긴 수로로 원평리, 신원리, 오촌리까지 뻗어 있었다. 국사당보의 조성과 관련하여 노씨 부인의 이야기가 전한다.
노씨는 오가면 노계리[현 오촌2리]에서 살았던 김우영(金宇英)[1610~1673]의 아들 김만진(金萬珍)[1661~1743]의 부인이다. 김만진은 광산김씨로 자암 김구의 후손이다. 노씨 부인은 본관이 광주라는 이야기만 전해 온다. 노씨는 우례(于禮)를 시댁에서 치르던 날 신묘한 꿈을 꾸었다.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서는 “오늘 밤 내가 서리가 내리도록 할 것이니, 그 서리를 따라 수소를 내도록 하라. 그러면 너의 집은 물론이요, 마을 전체가 흥하리라.”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날이 밝아 밖으로 나가니 하얀 서리가 길처럼 나 있어서 조랑말을 타고 따라 달리니 오가들이 끝나는 국사봉 아래 무한천변에 이르렀다고 한다. 노씨와 김만진은 마을 대동회의를 열서 보와 수로를 만들기로 하고 이듬해 봄부터 대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때 세운 보가 바로 국사당보로, 이후 오가평야는 기름진 쌀이 나는 곡창지대가 되었다고 한다. 오가평야의 물부족 문제를 해결한 노씨를 기리기 위해 1800년부터 국사봉 아래 노씨 사당을 건립하여 매년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제를 지냈다. 2018년 현재 예당저수지 ‘통수식’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
[위치]
국사당보는 무한천을 따라 조성되었으며 노씨 부인 사당은 국사봉 아래 수로변에 있었다고 한다.
[현황]
노씨 부인 제향은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져 왔으나 1963년 예당저수지 수리 시설의 완공으로 국사당보의 필요성이 사라지면서 함께 중지되었다. 노씨 사당도 함께 훼철되었다. 한편, 김만진과 노씨 부인이 거주하였다는 광산김씨 고택도 1960~1970년대 허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