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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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海文 |
이칭/별칭 | 고산(孤山),금오산인(金烏山人)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오산리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진 |
출생 시기/일시 | 1911년 - 이해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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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7년 - 이해문 예산군 신암면 오산리로 이주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 이해문 『조선』지에 「안 오는 동무」 발표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이해문 『시인춘추』 발간 |
활동 시기/일시 | 1938년 - 이해문 시집 『바다의 묘망』 발간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 이해문 서울로 이주해 성신여학교 근무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 이해문 6.25전쟁으로 예산 귀향 |
몰년 시기/일시 | 1950년 09월 29일 - 이해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3년 - 한국문인인장박물관 내 이해문 시비 건립 |
출생지 | 이해문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
거주|이주지 | 이해문 거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오가리 |
학교|수학지 | 예산보통학교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
활동지 | 이해문 활동지 - 충청남도 예산군 |
묘소 | 이해문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화천리 |
성격 | 시인|문학평론가 |
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시인·문학평론가.
[개설]
이해문(李海文)[1911~1950]은 예산 출신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부인은 안창남이다. 고산(孤山)과 금오산인(金烏山人)이라는 필명을 즐겨 사용하였다.
[활동 사항]
이해문은 1911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독학으로 한학을 익혔으며, 예산보통학교 5학년 중퇴 이후 독학으로 시문학을 공부하였다. 1928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신암면사무소와 예산군청에서 근무하였다. 1929년 『조선』지에 「안 오는 동무」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1930년 처가가 있는 예산군 신암면 오가리로 이주해 본격적인 시 창작 활동을 펼치며 1932년 『시인춘추』 동인지를 발간하였다. 1938년 발표한 시집 『바다의 묘망』은 고향의 향토애가 뿌리 깊게 반영되고 시대를 뛰어넘는 어휘들을 사용하여 1930년 한국 문단에서 개성적인 경지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된다. 1946년 서울로 이주하여 성신여학교에서 근무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예산으로 귀향하였다. 1950년 9월 19일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해문은 1930년대 말 『시인춘추』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서시」, 「제야」 등의 시를 발표하였고, 『맥』 동인으로 참여해 「그리움」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시집으로 1938년 발간한 『바다의 묘망』이 있다. 논문으로는 1940년 발표한 「시인과 언어」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묘소]
이해문의 묘소는 예산군 대술면 화천리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