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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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笠沈里胎封胎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입침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조성|건립 시기/일시 | 고려 - 입침리 태봉 태실 건립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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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71년 - 입침리 태봉 태실 『호서읍지』에 고려태봉(高麗胎封)으로 명기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72년 - 입침리 태봉 태실 『대흥군지도』에 기록 |
현 소재지 | 입침리 태봉 태실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입침리 |
성격 | 태실 |
크기(높이,길이,둘레) | 90㎝[비좌 가로]|60㎝[비좌 세로]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있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실.
[개설]
입침리 태봉 태실은 주인이나 건립 시기, 건립 과정을 기록한 기록들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태봉(胎封)은 왕자·왕녀의 태반을 매장하는 장소를 말한다. 태반을 항아리에 보관한 후 미리 정해진 태봉에 태실을 조성하고 태항아리와 지석을 묻는 절차를 장태(藏胎) 혹은 안태(安胎)라고 한다.
[건립 경위]
입침리 태봉 태실의 주인이나 건립 시기, 그리고 건립 과정을 기록한 기록들은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 대흥 고적조에는 입침리 태봉 태실로 보이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태봉 재군북십삼리 비문 박락 불능 전기(高麗胎峯 在郡北十三里 碑文 剝落 不能 傳記)’, 즉 군 북쪽 13리에 고려 태봉이 있으나, 비문이 훼손되어 내용을 알 수 없다고 쓰여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은 할 수 있으나 당시에도 의미를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1871년[고종 8] 편찬된 『호서읍지』에도 고려 태봉(高麗胎封)이 그려져 있다.
[위치]
입침리 태봉은 예당저수지 제방에 이어진 산봉우리 정상에 봉분처럼 솟아 있다. 산 정상부에 태실 비좌와 태실의 일부가 남아 있다.
[형태]
입침리 태봉 태실 비좌는 장방형으로 가로 90㎝, 세로 60㎝이다. 상면에는 비신을 받치는 방형의 홈이 있고 사면에 복련과 안상이 새겨져 있다.
[현황]
입침리 태봉 태실은 현재 예비군 참호를 만드느라 봉분 주변 여러 곳이 파헤쳐져 지형이 변형되고 훼손된 상태이다. 태실비의 대좌는 원위치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나 태실 석재는 참호 속에 묻혀 일부만 보인다.
[의의와 평가]
입침리 태봉 태실은 현재에도 전하는 고려시대의 태실로 가치가 있다. 『호서읍지』16권의 대흥현 지도, 『충청남도읍지』2책에 수록된 대흥군 지도, 1872년 제작된 『대흥군지도』, 『여지도서』 충청도 대흥 고적조 등에서 기록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