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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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延齡君胎室- |
이칭/별칭 | 고새울 태봉 태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699년 - 고새울 연령군 태실 터 태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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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0년대 - 고새울 연령군 태실 터 충남대학교에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0년대 - 고새울 연령군 태실 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서삼릉 태실 54기 발굴 조사하여 연령군 태항아리 발견 |
이전 시기/일시 | 1930년대 - 고새울 연령군 태실 터 서삼릉으로 태실과 태항아리 등 이전 |
이전 시기/일시 | 1960년대 - 고새울 연령군 태실 터 충남대학교로 비와 유물 일부 이전 |
현 소재지 | 고새울 연령군 태실 터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
출토 유물 소장처 | 충남대학교 박물관 -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99[궁동 220] |
출토 유물 소장처 | 서삼릉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37-1 |
성격 | 태봉 |
관련 인물 | 연령군 이훤|숙종|영조|명빈 밀성박씨 |
크기(높이,길이,둘레) | 63㎝[태실 높이]|80㎝[태실 너비]|44㎝[태실 깊이]|5㎝[태실 벽 두께]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고새울에 있는 조선 숙종의 아들 연령군 이훤의 태실 터.
[개설]
고새울 연령군 태실 터는 숙종의 아들인 연령군 이훤(延齡君 李昍)[1699~1719]의 태를 봉안한 곳으로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태실과 태항아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이전되었고 남아 있던 비와 일부 유물은 1960년대 충남대학교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서삼릉에 있던 태실과 태항아리는 오랫동안 봉인되었다가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조선 왕실 태실 54기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이면서 다시 발굴되어 연령군의 태실임이 확인되었다.
[건립 경위]
고새울 연령군 태실은 숙종과 명빈박씨[?~1703] 사이에서 태어난 숙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영조의 동생인 연령군의 태를 봉안하기 위해 1699년 세웠다.
[위치]
예산군 대술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4.5㎞를 이동한 후 궐곡저수지 방면으로 2㎞ 정도 가면 고새울 연령군 태봉이 있다.
[형태]
고새울 연령군 태실 터의 태실이 있던 자리는 높이 63㎝, 너비 80㎝, 깊이 44㎝이며 벽의 두께는 5㎝이다. 외부와 내부 바닥에 여러 흠이 나 있다.
[현황]
태실과 태항아리는 일제강점기 전국에 흩어져 있던 태실들과 함께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 고새울 태봉에 남아 있던 태실비와 태실의 개석은 1960년대 충남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980년대 정식으로 반출 허가를 얻어 충남대학교도서관 앞 야외에 전시 중이다. 연령군 이훤과 어머니 명빈박씨의 묘소는 옥계리 마을회관 뒤편에 있다. 본래 명빈박씨와 연령군 이훤의 묘소는 금천현(衿川縣) 번당리(樊塘里)[현 동작구 대방초등학교]에 있었으나, 1940년 당시 경성 지구 구획정리로 인하여 예산군 덕산으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