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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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車敬徵車命徵旌閭 |
이칭/별칭 | 효자 차경징·차명징 정려,형제 쌍효각,차경징·차명징 형제 정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서계양리 46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746년 - 차경징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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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751년 - 차명징 정려 건립 |
이전 시기/일시 | 1806년 - 차경징·차명징 정려 이전하면서 쌍효각으로 중건 |
현 소재지 | 차경징·차명징 정려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서계양리 460 |
원소재지 | 차경징·차명징 정려 원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가지리 |
성격 | 정려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2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서계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차경징과 차명징의 정려.
[개설]
차경징·차명징 정려는 차경징과 차명징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원래 예산군 신양면 가지리 거변마을에 있던 것을 후손들이 서계양리 두련리마을로 옮겨 왔다.
[위치]
예산군 신양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지방도616호선을 따라 1㎞ 정도 가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500m 정도 들어가면 서계양리 두련리마을이 나온다. 차경징·차명징 정려는 두련리마을 마을회관 옆에 남쪽을 향하여 세워져 있다.
[변천]
차경징·차명징 형제가 죽은 뒤 1746년(영조 22) 신양면 가지리 거변마을에 차경징의 정려가 세워졌고, 1751년 차명징의 정려가 세워졌다. 1806년(순조 6) 차경징·차명징 형제가 죽은 후 후손들이 서계양리 두련리마을로 정려를 이거하면서 두 정려를 합하여 쌍효각으로 고쳐 지었다.
[형태]
차경징·차명징 정려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건물로 두 단의 시멘트 기단 위에 화강암 주춧돌을 놓고 위에 원기둥을 올렸다.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올리고 양옆에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4면에 홍살이 둘렀으며 중앙 상단에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명정 현판은 각각 ‘효자 처사차경징지문 숭정기원후재병인영묘조 명정 삼병인오월일립(孝子處士車敬徵之門崇禎紀元後再丙寅英廟朝命旌三丙寅五月日立)’, ‘효자 처사차명징지문 숭정기원후삼신미 십월 일립(孝子處士車命徵之門 崇禎紀元後三辛未十月日立)’이라고 쓰여 있다.
[현황]
차경징·차명징 정려는 두련리 마을회관 옆에 있으며 정려 주변으로 철제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 울타리 앞에는 차경징·차명징 형제에 대해 설명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