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610
한자 李奎旌閭
이칭/별칭 효자 이규 정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사리 산323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0년연표보기 - 이규 정려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7년 - 이규 정려 중수
현 소재지 이규 정려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사리 산323 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규의 정려.

[개설]

조선 후기의 효자 이규는 대표적인 세 가지 효행 중 단지(斷指), 할고(割股)를 하였고 사후에 증직, 정려를 받게 되었다. 이규는 본관이 청해(靑海)이고, 자는 익보(益輔)이다. 이규의 고조할아버지 이효신(李孝信)[?~1610]이 인근의 땅을 사패지로 받고 임진왜란 중 서울에서 낙향하면서부터 청해이씨가 고덕면 사리에 입향하였다. 사리에는 이효신과 후손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이규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약효가 없자, 하늘에 기도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어머니 입에 떨구었다고 한다. 아버지마저 병석에 눕게 되고 약을 써 보았으나 별다른 차도가 없자 자신의 다리와 왼쪽 팔의 살을 떼어 먹여 아버지가 소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리와 팔에 난 깊은 상처로 인하여 이규는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았다고 한다. 이규는 효행으로 사후 40여 년 만에 증직을 받았다. 족보에는 통훈대부 사헌부감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890년(고종 27) 다시 한 번 포상을 받아 명정을 받게 되었다.

[위치]

이규 정려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사리 산323번지에 있다

[형태]

이규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다. 정면에는 홍살을 설치하고 나머지 벽에는 반담이 둘러 있다. 정려의 중앙 상단부에는 1937년 만들어진 ‘효자 성균진사 증통훈대부 사헌부감찰 이규지려 성상이십칠년 이월 일 명정(孝子成均進士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李奎之閭聖上二十七年二月 日 名旌)’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 뒤에는 1901년 김병창이 지은 정려기가 걸려 있다. 정려기는 1937년 정려각 중수 때 1901년 썼던 정려 현판을 새로 만들어 단 것이다.

[의의와 평가]

이규의 효행은 사후 40여 년 만에 증직되었으나 정려는 180여 년이 지나서 건립되었다. 덕산 지역에서 청해이씨의 기록이나 유적을 찾기 어려우나 청해이씨는 보령 남포와 공주 등지에서 자리 잡고, 사마 급제자를 배출하는 등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이규 정려 건립 과정에 덕산의 청해이씨 외에도 주변 지역 일가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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