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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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應時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송정길 2-34[차동리 472-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989년 - 신도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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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40년 - 손응시 출생 |
현 소재지 | 손응시 신도비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송정길 2-34[차동리 472-2]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손응시 |
재질 | 돌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손응시의 신도비.
[개설]
손응시 신도비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손응시(孫應時)[1540~?]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88년 후손들이 세웠다. 손응시는 조선시대 인물로 예산과 관련이 없지만 후손들이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로 이주하면서 묘를 이장하고 신도비를 세웠다. 손응시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경전과 사략(史略)과 제자서(諸子書)를 통섭하였다. 하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고, 무술을 연마하여 문과 무를 겸비하였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터지자 집안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하고 의장(義將)으로 추대되어 공주를 거쳐 전주까지 승전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진중에서 사망하였다.
[건립 경위]
손응시의 자손들이 당진군 고대면 대촌리 대봉산 신좌원에 예장하였고, 이후 손응시는 병조참판을 증직받았다. 1988년 후손들이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로 이주하면서 손응시의 묘를 이장하고 신도비를 세웠다.
[위치]
예산군 신양면 소재지에서 국도32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5㎞ 정도 가면 도로 북쪽에 차동리 송정마을이 나온다. 손응시 신도비는 송정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형태]
손응시 신도비는 거북이 받침 위에 오석으로 만들어 세웠다. 앞면에 ‘증병조참판 익충의 밀양손공 신도비(贈兵曹參判 謚忠義密陽孫公神道碑)’라고 쓰여 있다. 비문은 후손 손상근(孫相根)과 손경승(孫庚昇)이 썼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