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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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洽墓域 |
이칭/별칭 | 화보,취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명산로 99-43[봉림리 산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608년 - 이흡 묘역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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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49년 - 이흡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08년 - 이흡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4년 - 이흡 묘역 이흡 묘비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0년 - 이흡 묘역 이흡 신도비 건립 |
현 소재지 | 이흡 묘역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명산로 99-43[봉림리 산5-1] |
성격 | 묘소 |
양식 | 봉토분 |
관련 인물 | 이흡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80㎝[이흡 묘비 비신 높이]|69㎝[이흡 묘비비신 너비]|30㎝[이흡 묘비 비신 두께]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흡의 묘.
[개설]
취암(醉庵) 이흡(李洽)[1549~1608]은 뛰어난 문장과 학문으로 이름난 조선 후기 문신이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화보(和甫), 호는 취암(醉菴)이다. 할아버지는 이식(李埴)이고, 아버지는 한양군(韓陽君) 이흥준(李興畯)이며, 어머니는 한승정(韓承貞)의 딸이다. 북애(北厓) 이증(李增)[1525~1600]의 문인으로 1573년(선조 6) 생원이 되었고, 158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승문원에 등용된 뒤 정언·헌납·장령 등을 지냈다.
어린 시절 한여름 혹서기에 글 읽기에 전념하느라 흘린 땀으로 바지가 상할 정도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증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성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써 낸 문장은 대단히 아름다워서 주변 선비들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다는 내용이 『취암이공실기(醉菴李公實記)』에 전한다.
[위치]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재동마을에 있는 문열공 이계전의 부조묘를 정면으로 봤을 때 오른쪽 야산으로 난 길을 따라 150m 정도 올라가면 길 끝에 이흡 묘소와 이흡의 자손들의 묘소가 있다.
[형태]
이흡 묘역은 3개의 봉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좌우로 부인들의 묘가 있다. 이흡 묘비 비신은 높이 180㎝, 너비 69㎝, 두께 30㎝이다.
[금석문]
이흡 묘비는 1964년 건립되었으며 묘비에는 ‘증순충보사공신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 겸판의금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 세자이사 아흥군 행통훈대부사간원헌납 겸춘추관편수관 이흡지묘 증정경부인여흥이씨부 정경부인 광주이씨부좌(贈純忠補祀功臣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 兼判義禁府事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世子貳師鵝興君行通訓大夫司諫院獻納兼春秋館編修官李洽之墓贈貞敬夫人驪興李氏祔貞敬夫人光州李氏祔左)’라고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는 이흡 묘역 외에 한산이씨의 문중 묘역이 있다. 이흡이 봉림리로 입향한 이후 한산이씨가 대대로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이흡 묘소와 관련된 자료로 이흡 신도비와 『취암이공실기』가 있다. 이의배 신도비 우측 길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2010년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이흡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명은 방계손(傍系孫) 은규(殷珪)가 썼다. 『취암이공실기』는 후손 이사정(李思靖)이 1801년 편찬한 이흡의 시집이다. 이흡이 유배 시절 남긴 시들을 엮어 발행하였다. 호조판서 한만유(韓晩裕)의 서문과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상권에는 연보, 묘지명, 제문, 원향문(院享文), 제문(祭文) 등 이흡의 행적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중권에는 시 102수가 실려 있다. 하권은 부록으로 이흡의 큰아들 이경배(李敬培)가 지은 묘지명과 둘째아들 이의배(李義培)의 신도비명, 그리고 손자 이목(李穆)의 묘갈명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