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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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瑩中墓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산3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중의 묘.
[개설]
조영중 묘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의 아버지 조영중(趙瑩中)[1558~1646]의 묘이다. 조영중의 본관은 풍양, 자는 군수이다.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조간(趙侃)이고, 어머니는 의령남씨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읽으며 과거 공부를 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39세에 처음으로 전설사별좌에 재임되었으며, 가설군자감주부가 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보은현감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선공감첨정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에 아들 조익과 대부도(大阜島)에 들어갔다가 강화로 들어갔는데, 강화가 함락될 때 무사히 빠져나와 당진을 거쳐 신창으로 귀향하였다. 1638년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지만 몸이 좋지 않아 조정에 나가지 못하였다. 1646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이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위치]
예산군 신양면 신양중학교를 지나 2㎞ 정도 가면 신양리에 조익 사당이 있다. 조익사당 뒷편 야산 중하단부에 조익선생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가 있고, 조익선생묘 아래에 조영중 묘가 있다.
[변천]
조영중은 1646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대흥현 동화산밑에 묘역을 조성하였다. 조익은 1655년 사망하여 조영중의 묘 위쪽에 묘를 조성하였다.
[형태]
조영중의 묘는 봉토를 하고 봉분 주위로 둘레돌을 둘렀다. 묘의 한 단 아래에 상석이 있고 좌우로 문인석과 석주가 배치되어 있다.
[금석문]
조영중의 묘 앞에는 2000년 세운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증의정부영의정 행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 조영중지묘 배 증정경부인 해평운씨부좌(贈議政府領議政行折衡將軍僉知中樞府事趙瑩中之墓 配贈貞敬夫人海平尹氏祔左)’라고 쓰여 있다. 묘비문은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썼으며 여성재(呂聖齋)가 전(篆)하였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88㎝, 폭 86㎝, 두께 43.5㎝이다. 원래 묘비는 조익 사당에서 묘로 올라가는 길 옆에 세워져 있으며 마모가 심하다.
[의의와 평가]
조영중의 묘비를 병자호란 당시 척화를 이끌던 김상헌이 글을 짓고 송중길이 쓴 것으로 보아 아들 포저 조익의 정치적 노선과 학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