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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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孝榮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개축 시기/일시 | 1803년 - 이효영 묘 신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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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 시기/일시 | 2006년 11월 15일 - 이효영 묘 묘역 단장 |
현 소재지 | 이효영 묘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
성격 | 묘 |
양식 | 봉토분 |
관련 인물 | 이효영|정종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144㎝[구비 높이]|53㎝[구비 폭]|14.5㎝[구비 두께]|220㎝[신비 높이]|57.5㎝[신비 폭]|27.5㎝[신비 두께]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전주이씨 입향조인 이효영의 묘.
[개설]
이효영 묘는 조선 2대 정종(定宗)의 손자이자 의평군 이원생(李元生)의 아들이자 전주이씨의 대술면 입향조인 이효영의 묘이다.
[위치]
이효영 묘는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숲실마을 뒤편의 야산 정상부에 있다. 이효영 묘에 오르면 사방을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쪽 감탕골에는 강민첨 장군의 묘가 직선거리에 있다.
[형태]
이효영 묘 앞면에는 상석이 놓여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 2기와 망주석2기가 있다. 상석 오른쪽에는 구비와 신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옛 비석은 글씨가 훼손되어 전혀 알아볼 수 없다. 구비는 높이 144㎝, 폭 53㎝, 두께 14.5㎝이고 신비는 높이 220㎝, 폭 57.5㎝, 두께 27.5㎝이다.
[금석문]
이효영 묘의 새로 세운 비석 말미에 ‘숭정기원후삼계해 개발(崇禎紀元後三癸亥 改達)’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1803년(순조 3) 다시 건립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묘비에는 ‘유명 조선국왕손 창선대부 가인정효영묘 숙부인동래정씨(有明朝鮮國王孫彰善大夫阿仁正孝榮墓淑夫人東萊鄭氏)’라고 새겨져 있다. 상석 왼쪽에는 2006년 11월 15일 묘역을 단장하면서 세운 비석이 있는데 후손 이찬구가 쓴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은 정종 공정대왕의 장남 의평군의 3자이신 아인부정이요 휘는 효영이요 품계는 창선대부에 이르다. 본관은 전주이씨다. 앙니부정의 비는 숙부인 동래정씨다. 성품이 단아하여 부덕이 있다고 아들이신 정송수의 비명에 기술되어 있으나 공의 행적에 대해서는 보첩이나 비명에도 남겨진 기록이 없어 50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참고삼을 문헌이 없어 무어라 기술할 수 없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 공의 묘는 현재 예산군 대술면 이티에 모셔져 있다. 그간에 문중 소종파 대표들이 수년 전부터 협의하여 문중의 뜻을 모으고 또한 성금을 거출하여 오늘에야 공의 묘소를 단장하게 되었으니 후손된 도리로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랴.”
비석 뒷면에는 예산, 고령, 공주, 청양, 양주, 아산 등 묘소를 단장하는 데 참여한 추진위원의 명단이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이효영 묘 관련 유적으로 같은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숲실마을에 전주이씨 사당이 있다. 이효영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이효영이 어떠한 사유로 대술면 이티리 숲실마을에 은거하게 되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1400년 2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이 실권을 장악하고 11월 정종이 왕위에서 물러나는 시기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