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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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忻墓 |
이칭/별칭 | 성흔 선생 묘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조성 시기/일시 | 1626년 - 성흔 묘역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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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55년 - 성흔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26년 - 성흔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31년 - 성흔 묘비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 성흔 묘비 건립 |
현 소재지 | 성흔 묘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
성격 | 능묘 |
양식 | 봉토분 |
관련 인물 | 성흔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106.5㎝[묘비 높이]|48.4㎝[묘비 폭]|15.5㎝[묘비 두께]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성흔의 묘.
[개설]
1613년(광해군 5) 일어난 계축옥사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럽자 성흔(成炘)[1555~1626]은 벼슬을 버리고 양주로 낙향하였다. 이후 증조할아버지 성희옹의 처가인 대흥군 원동면 가좌울[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로 낙향하였다. 귀곡리에 정착한 성흔은 ‘모든 재앙을 추방하고 덕을 심는다.’라는 뜻으로 집 주위와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를 심고는 삼괴당(三槐堂)이라 호를 짓고 학문과 서예에 전념하였다. 1626년(인조 4) 김포 개화산에서 성희옹의 묘를 이전하고 불천위신주까지 모셔 왔다. 성흔은 1626년 사망하여 생전의 뜻대로 증조할아버지 성희옹의 사당 뒤 옥녀봉 아래에 예장되었고 1631년 비석을 세웠다.
[위치]
성흔 묘는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으며 성희옹 부조묘 뒤쪽 산 중턱에 있다.
[형태]
성흔 묘의 봉분은 화강암으로 둘러 장식되어 있으며 상석 앞쪽에 동자석상 2개가 마주 서 있다. 더 앞쪽에 석주와 문인상이 한 쌍씩 나란히 서 있다. 봉분의 오른쪽에는 1631년 세운 비석과 1997년 세운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금석문]
성흔 묘의 묘비는 1631년 세워졌으며, 묘비 앞면 가운데에는 ‘통훈대부 행장례원사의 성공지묘 공위흔 증좌승지(通訓大夫行掌隸院司議成公之墓公諱欣贈左承旨)’, 오른쪽에 ‘부인안동김씨묘 재예산동면감방현곤좌지원(夫人安東金氏墓在禮山東面坎方峴坤坐之原)’이라고 쓰여 있다. 뒷면에는 ‘숭정 4년(崇禎四年)[1631년] 4월 일(四月日)’이라고 쓰여 있다. 묘비의 크기는 높이 106.5㎝, 폭 48.4㎝, 두께 15.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