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56
한자 胎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문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81년(숙종 7) - 현종 태실 정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47년 3월 21일 - 헌종 태실 조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 헌종 태실 복원
현종 태실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태봉산지도보기
연령군 태실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고새울마을 지도보기
화령옹주 태실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월송리 태봉지도보기
헌종 태실 - 충청남도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입침리 태실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입침리 태봉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있는 조선 왕실 자손의 태를 봉안한 곳.

[개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태를 소중하게 다루는 풍속이 있었다. 특히, 왕실 자손의 경우에는 특별한 절차와 의식을 거쳐 길지를 골라 소중하게 묻었는데, 이를 태실이라고 한다. 태실은 크게 아기 태실과 가봉 태실로 구분된다. 아기 태실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만든 태실이고, 가봉 태실은 아기 태실의 주인이 왕위에 오른 후 그 위에 추가로 화려한 석물을 올려 치장한 태실이다. 아기 태실은 대개 태옹이라는 항아리에 넣어 봉안하는 형태였지만 왕세자나 왕세손과 같은 귀한 신분의 태는 가봉태실이 될 것을 고려하여 석실을 만들어 안치하였다.

태실이 있는 곳을 태봉이라고 불렀으며, 태실의 주변에는 금표(禁標)를 세워 채석·벌목·개간·방목 등 일체의 행위를 금지시켰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병전(兵典) 잡류(雜類)에는 태실 조성이 끝나면 태실의 간수군(看守軍)을 두어 보호하는데, 선왕과 선왕후는 각 4명으로 하되, 4대손이 다하면 2명으로 하며 왕과 왕비는 각 8명, 왕세자는 4명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예산 지역에는 현종, 헌종, 연령군, 화령옹주, 입침리 태실 등 5곳이 있는데, 가봉 태실이 2개소이고 아기 태실이 3기이다. 현종의 태실은 예산의 박산(朴山)[신양면 황계리 태봉산]에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681년(숙종 7)에 태실을 정비하고 예산현을 군으로 승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종 태실은 석물이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았으나, 2011년 태봉산 공사 중에 태실터 근처에서 현종 태실비가 발견되었다.

헌종의 태실은 1847년 3월 21일 조성되었는데, 조선 왕조가 몰락한 후 흩어져 있던 것을 2011년에 복원하였다. 그 후 2015년에 헌종 태실비의 일부가 발견되었으며, 2017년에는 헌종 태실 인근 옥계저수지 수중에서 부속유물인 사방석(四方石)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연령군 태실대술면 궐곡리 고새울마을에 장태지가 남아 있고, 함신과 함개 등이 대술면 궐곡리와 충남대학교에 흩어져 보관되어 있다. 화령옹주 태실광시면 월송리 태봉에 터만 남아 있으며, 입침리 태실응봉면 입침리 태봉에 일부 석물이 잔존해 있다.

[의의]

2017년 헌종 태실 사방석의 발견으로 인해 예산군은 향후 문화재 지정과 복원을 위해 헌종 태실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태실은 생명 존중, 풍수와도 높은 관련성을 갖고 있으므로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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