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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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風水地理 |
영어공식명칭 | Fengsui Geography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원회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땅의 이치를 통해 현실의 길흉화복을 설명하는 이론.
[개설]
‘풍수(風水)’라는 용어는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기(生氣)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추게 되기 때문에, 바람을 막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 데서 생기가 응결한다는 뜻에서 ‘풍수’라는 말이 성립되었다. 이러한 기본 관념에 음양오행(陰陽五行)과 같은 형이상학적 이론을 결부시켜, 지맥을 따라 흐르는 신비한 생기를 받느냐의 여부에 따라 현실 세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가리는 이론 체계로 발전하였는데, 이것이 풍수지리[풍수설]이다.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현재까지 예산군에 전하여 오는 금언, 전설, 일화, 믿음 등을 보면 전통적인 풍수지리의 일반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과거 예산 지역에는 두세 마을에 한 명꼴로 지관이 있을 만큼 풍수지리가 생활과 밀접하였다고 한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지관의 연령층이 대부분 60~70대였으니, 연륜이나 경험이 쌓인 이들이 지관으로 활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풍수지리의 핵심]
예산 지역에서 전하여 오는 풍수지리의 핵심은 다른 지역에서 전하는 일반적인 풍수지리의 내용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집터를 말하는 양택(陽宅)에서는 삼살(三殺) 방위[세 가지 나쁜 살이 있는 방위]를 피하고 팔택가상법(八宅家相法)[안방, 대문, 부엌이 풍수의 여덟 방위에 어떻게 배치되었는지를 보아 음양오행상의 상호 조화를 따지는 풍수 방법]의 전통 건축 이론을 따라 개개인의 출생 연도에 맞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핵심이다. 묏자리를 말하는 음택(陰宅)에서는 해악을 주는 자리를 피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물이 차는 자리, 벌레나 뱀이 시신을 갉아먹는 자리, 나무뿌리가 시신을 감싸는 자리, 시신이 까맣게 타는 자리 등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예산 지역에서는 집터와 관련한 양택풍수보다는 묏자리와 관련한 음택풍수를 중히 여겼기에, 집을 지을 때 좌향(坐向)은 보지 않더라도 묘를 쓸 때에는 지관을 집에 꼭 들여 묘를 썼다. 집은 잘못 지어도 자기 혼자만의 문제이지만, 묘의 경우는 고인과 관계된 친인척이 많으므로 풍수를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다수의 의견을 좇아 거의 100% 풍수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묏자리 탓으로 돌릴 정도로 음택풍수를 따졌다고 한다.
[명당]
풍수지리에서 명당(明堂)은 후손에게 장차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고 보는 묏자리나 집터를 말한다. 생기가 땅 속의 지맥을 통하여 흐르다가 멈춘 곳이 명당인데, 명당의 형국 중 주요한 것으로는 금계포란(金鷄抱卵)[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 앵소포란(鶯巢抱卵)[뻐꾸기 집에서 알을 품고 있는 형국], 매화낙지(梅花落地)[매화가 떨어져 향기가 진동을 하는 형국], 금오포란(金鰲抱卵)[자라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 금구입수(金龜入水)[금거북이 물로 들어가는 형국], 맹호출림(猛虎出林)[호랑이가 숲에서 나오는 형국], 삼승좌불(三僧座佛)[승려 셋이 앉아 불도를 닦는 형국], 은사출림(隱蛇出林)[숨어 있는 뱀이 숲속에서 나오는 형국] 등이 있다.
[예산군의 풍수지리]
예산군은 삽교천과 무한천이 만들어 낸 예당평야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차령산맥이, 서쪽으로는 가야산맥이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 이중환(李重煥)[1690~1752]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곳으로 친 내포 땅, 곧 가야산 앞뒤의 열 고을 중에서 동쪽과 남쪽이 지금의 예산 땅이니 가히 살기 좋은 땅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서울의 세도가들이 내포에서도 이곳 예산 땅에 농토와 집을 두고 근거지로 삼았는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집안으로 영조(英祖)의 외척이기도 했던 경주김씨 일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현대에 와서도 예산군의 풍수지리에 관련하여, 예산군이 전국 단일 군 중에서 국회의원 및 고위 공무원이 가장 많은 군이며 그 원인이 가야산과 금오산의 기운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또한, 2000년대 들어와서 가야산 끄트머리 봉산 자락에서 신암면, 아산시 도고면 쪽으로 철탑이 박혔는데, 그것 때문에 예산군 지리의 기운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속설도 전한다.
예산군에서는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특히 가야산의 기운을 상서롭게 믿고 있다. 가야산이 영험한 산이고 풍수적으로 명산이라는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가 있는 곳도 가야산이다. 예산군에는 남연군의 묘와 풍수에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가 있다. 1882년 남연군이 죽고 나서 어느 날 한 지관(地官)이 찾아와 명당자리를 알려주었다. 지관은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오는 자리[二代天子之地]’가 있고, 광천 오서산에는 ‘만대에 영화를 누리는 자리[萬代榮華之地]’가 있다.”라고 했다. 흥선군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야산을 택했다.
실제로 남연군 묘의 지세는 한마디로 풍수지리가 일컫는 명당의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뒤로는 가야산 서편 봉우리에 두 바위가 문기둥처럼 서 있다는 석문봉이 주산이 되고, 바라보아 오른쪽으로는 옥양봉, 만경봉이 덕산을 거치면서 30리[약 12㎞]에 걸쳐 용머리에서 멎는 청룡의 기운을 이룬다. 왼쪽으로 백호의 기운은 가사봉, 가엽봉에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맥이 금청산 월봉에 뭉쳐 감싼 자리이다. 동남향을 바라보면 평야를 지나 멀리 60리[약 24㎞] 떨어진 곳에 있는 봉수산이 안산[풍수지리에서,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이 된다. 또한, 청룡맥의 옥녀폭포 물과 백호맥의 가사봉 계곡 물이 와룡담에 모였다가 절 앞에서 굽이치며 흐르니 임수(臨水)의 지세도 얻었다. 가야산은 그 두 물줄기가 합치는 곳에 있다. 금탑이 있던 자리라는 남연군묘는 그 뒤 우뚝 솟은 언덕배기이니, 흔히 절 마당이나 법당 앞에 탑을 놓는 방식과는 달리 절 뒤쪽 언덕에 탑이 있었던 것만 보아도 예사 자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방향에 관한 풍수지리]
예산군에서는 풍수지리 중 방향에 관해서도 전하는 말이 있다. 예컨대, 잠을 잘 때 머리는 동쪽으로 둔다. 이는 사주나 풍수에서는 태양과 달을 중시하는데, 태양과 달은 각각 양과 음의 기운을 의미하므로 해 뜨는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떠오르는 해의 기운을 직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화(火)의 기운이 부족할 때에는 남쪽을 향하고 누워서 자고, 반대로 화병이 있어 화의 기운이 지나칠 때에는 남쪽을 등지고 북쪽을 향하여 자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북쪽의 수(水)의 기운과 상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풍수지리와 관련해 전하는 일화]
이씨(李氏)네 선산이 예산읍 아리랑고개에 있는데, 거기가 옛날부터 명당이라 일본 사람들이 거기를 끊어 버리고 길을 만들었다. 그래서 예산군의 군세(郡勢)가 고만고만한 게 아니냐고 예산읍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광시면 사거리에 육교를 만들 때, 산모롱이를 부수고 육교를 내었다. 그 뒤로 그 동네에 죽어 나간 사람이 많았는데, 산모롱이를 끊었기 때문에 그런 죽음이 일어난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2010년 무렵에 오가면 예산운전면허시험장이 들어선 자리가 원래는 공동묘지 자리였다. 공사를 하기 전에 보상비를 줘 가며 묘 임자들에게 이장(移葬)을 통고하였는데, 파묘(破墓)할 때 충렴(蟲廉)[벌레가 드는 자리]이나 목렴(木廉)[나무뿌리가 얽힌 자리] 자리에 있는 산소의 경우는 그 자손들이 병원 출입이 잦았다고 한다.
띠풀 뿌리가 시신의 눈과 귀에 집중적으로 뻗어 들어간 묘가 있는데, 그런 집의 내막을 들어보면, 자손 중에 귀가 먹거나 눈을 다쳐 고생하는 사람이 꼭 있다고 한다. 충렴이나 목렴이 아닌 곳에 자리를 잡은 경우는 집안에 그런 우환이 없었다.
가야산 줄기에 청주한씨(淸州韓氏) 묘가 있는데, 가문에서 큰돈을 들여 석물이며 봉분을 으리으리하게 해 놓았다. 그 뒤로 자손 중에 악상(惡喪)이 자주 나고 하여, 석물도 다 없애고 봉분도 원래 크기대로 줄였더니 그 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