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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701
한자 柳鴻增
영어공식명칭 Yu Hongjeung
이칭/별칭 익녀(翼汝)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0년연표보기 - 유홍증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79년연표보기 - 유홍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83년 - 유홍증 동몽교관 조봉대부에 추증
출생지 전라북도 무주군
사당|배향지 유홍증 효자비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문화(文化)

[정의]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익녀(翼汝)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 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고, 큰형은 유봉증(柳鳳增), 작은형은 유학증(柳鶴增)이다.

[활동 사항]

유홍증(柳鴻增)[1850~1879]은 1850년(철종 1)에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형들을 존경하여, 형들을 대할 때 언제나 부모를 대하듯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는 반드시 형들의 의견을 듣고 따랐다. 큰형 유봉증이 종가(宗家)로 입양된 후에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자 유홍증은 형으로부터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보답해 주지 못하게 된 점을 항상 애석하게 여겼다. 유홍증은 또 작은형 유학증이 장수 현감(長水縣監)으로 임명받고 고향을 떠나자 과거(科擧) 응시나 관직 진출에 대한 꿈을 버리고, 집에 남아 형을 대신하여 부모를 섬기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였는데, 그 모습이 큰형인 유봉증과 자웅(雌雄)을 겨룰 정도였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이들 형제들의 효심이 정말 난형난제(難兄難弟)라고 하였다. 유홍증의 행실은 무주 및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사림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졌다. 유홍증은 1879년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880년(고종 17) 유홍증이 사망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무주 지역 사림은 유홍증의 효행을 조정에 알리고, 그에게 증직과 효행을 기리는 정려(旌閭)를 세우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에 1883년(고종 20) 유홍증에게는 동몽교관 조봉대부(童蒙敎官 朝奉大夫)라는 직이 추증(追贈)되었고, 그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와 효자비의 건립이 허락되었다. 유홍증의 효자비는 2017년 현재,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 상유(上柳) 마을문화 유씨 정려각 안에 들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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