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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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 |
영어공식명칭 | Im Kkeogjeong |
이칭/별칭 | 임거정(林巨正),임거질정(林巨叱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성주 |
[정의]
조선 전기 강원도 철원 지역을 비롯하여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를 무대로 활동한 도적의 우두머리.
[개설]
임꺽정[?~1562]은 백정(白丁) 출신으로, 황해도와 강원도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던 도적패의 우두머리이다. 임거정(林巨正) 또는 임거질정(林巨叱正)이라고도 한다. 철원 한탄강 고석정의 고석바위에는 관군에 쫓기던 임꺽정이 숨었다고 전하는 바위 동굴이 있으며, 임꺽정이 관군의 화살을 피하려고 바위 아래 한탄강으로 뛰어내려 꺽지로 변신하였다는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 함경도에서 거둔 세곡을 한양으로 옮기려면 반드시 철원을 거쳐야 했는데, 임꺽정은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세곡을 약탈해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여 일부에서는 의적(義賊)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활동 사항]
임꺽정에 관한 역사 기록 대부분은 신출귀몰한 도주와 이를 쫓는 관군의 체포 과정만 적고 있다. 임꺽정의 출신 배경이나 성장 과정, 생애와 사상 등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 실학자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임꺽정은 본래 양주민(楊州民)”이라 하였고,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은 “임꺽정은 양주에서 도우업(屠牛業)을 하던 자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임꺽정은 도적이 되기 전까지 양주 지방의 백정(白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임꺽정이 도적이 된 것은 양반 관료의 수탈과 지방 토호들의 행패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임꺽정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무리를 지어 도적 패가 되었다. 조선 명종 때는 전국 각지에서 도적화하는 무리가 증가하여 일종의 민란(民亂) 수준으로 번져 나갔다. 하지만 이들의 목적은 왕권을 탈취하거나 위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탐관오리 또는 토호들의 재물을 탈취하는 것이었다.
임꺽정은 점점 세력을 키워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관아를 습격하고 창고를 털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민심을 얻었다. 1559년(명종 14)에는 개성까지 쳐들어가 도둑질을 하였고, 군사를 이끌고 토벌하러 온 포도관 이억근(李億根)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이익은 임꺽정 무리를 토벌하기 위하여 3년간 수개 도의 군사를 총동원한 셈이었다고 하였다.
임꺽정은 이후 서울까지 진출하였으나 부하들과 참모인 서림(徐林)까지 붙잡혀 기세가 꺾였고, 1562년 1월 황해도토포사 남치근(南致勤)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