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1373
한자 土亭遺稿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승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652년연표보기 - 『토정유고』 이선 편찬
간행 시기/일시 1720년연표보기 - 『토정유고』 이정익 간행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관악구 신림동 산56-1] 103동
성격 시문집
저자 이지함
편자 이선|이정익
간행자 이정익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17.9㎝[가로]|23.1㎝[세로]

[정의]

조선 전기 충청남도 아산현감 이지함의 문집.

[개설]

『토정유고(土亭遺稿)』는 충청남도 아산현감을 지낸 이지함(李之菡)[1517~1578]의 문집으로, 시문과 상소, 묘갈명(墓碣銘) 등이 실려 있다.

[저자]

『토정유고』를 지은 이지함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형백(馨伯)·형중(馨仲), 호는 수산(水山)·토정(土亭)이다. 서경덕(徐敬德)[1489~1546]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1573년 유일(遺逸)[조선시대 초야에 은거하는 선비를 찾아 천거하는 인재 등용책]로 천거되었다. 이지함은 1574년 포천현감을 거쳐 1578년 아산현감이 되었고,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 구호에 힘쓰는 등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이지함은 천문과 지리, 의약과 복서(卜筮)[앞날의 운수·길흉 따위를 미리 판단하는 일], 법률과 산수, 음악과 관상 등의 술수에 밝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이지함의 이인(異人) 같은 행적에 관한 이야기가 다수 만들어졌다.

[편찬/간행 경위]

이선(李選)이 1672년(현종 13) 7월부터 약 2~3년간 홍문관응교(應敎)로 재직하던 중 이지함의 유고(遺稿) 1질을 묶어 『토정유고』라 하고 교서관(校書館)에 소장해 두었다. 『토정유고』를 현손(玄孫) 이정익(李禎翊)이 가져다 열람하고는 집안에 전하는 기록 등을 합하여 한 편을 만들었다. 송시열(宋時烈)과 권상하(權尙夏)에게 발문(跋文)을 받고 1720년(숙종 46)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토정유고』는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각 면은 10행 20자, 크기는 가로 17.9㎝, 세로 23.1㎝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토정유고』는 원집(原集) 상·하와 부록(附錄) 합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는 정호(鄭澔)의 서문과 목록이 실려 있다. 상권에는 저자의 시문을 모아 놓았는데, 시로는 「차송운장운(次宋雲長韻)」 1수와, 사(辭)로 「차도정절귀거래사(次陶靖節歸去來辭)」 1편, 설(說)로 「대인설(大人說)」·「피지음설(避知音說)」·「과욕설(寡欲說)」 3편, 소(疏)로 「이포천시상소(莅抱川時上疏)」와 「이아산시진폐상소(莅牙山時陳弊上疏)」 2편이 있다. 이 중 두 편의 상소는 저자의 유일한 관력인 포천현감과 아산현감 시절에 올린 것으로, 앞의 것은 포천의 피폐한 재정 상황을 구제할 방책을 제시하였고, 뒤의 것은 아산의 군정(軍政)의 폐단을 논하고 시정을 요구한 것이다. 특히 군정의 폐단을 해소할 대책으로 환난을 겪어 흩어지는 백성들을 은덕으로 어루만져야 숨은 백성들이 돌아올 것이고, 돌아온 병사들을 의용(義勇)으로 가르쳐 이들이 더욱더 많아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국은 족징(族徵)[군역 의무자가 도피하였을 때 그 의무를 친척에게 요구하던 일]의 병폐를 없애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건의하고 있다.

하권에는 이이(李珥)의 『석담일기(石潭日記)』, 이정형(李廷馨)의 『동각잡기(東閣雜記)』에서 저자의 행적을 채록한 유사(遺事)가 실려 있고, 부록으로 고경명(高敬命), 조헌(趙憲)이 지은 시와 이산해(李山海)가 지은 묘갈명 및 증작(贈爵)과 시호를 청하는 계장(啓狀)이 실려 있다. 말미에 송시열과 권상하가 지은 발문(跋文), 간행 경위를 밝힌 이정익(李禎翊)의 발문이 부기(附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지함은 처사형(處士型) 사림이 조선 후기 사회와 민생을 위해 어떤 고민을 하였으며, 어떤 대안을 모색하였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 인물이다. 『토정유고』는 이런 처사형 사림의 전형을 보여 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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