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26
한자 任敞
영어공식명칭 Im Chang
이칭/별칭 회이(晦而),강개옹(慷慨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교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52년연표보기 - 임창 출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89년 - 인현왕후 폐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94년 - 인현왕후 복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01년 - 인현왕후 사망
활동 시기/일시 1701년 - 임창 장희빈과 남인들을 엄벌하라는 상소를 올림
활동 시기/일시 1702년 - 임창 전라도 나주로 유배됨
활동 시기/일시 1703년 - 임창 아들 임두하의 호소로 풀려남
활동 시기/일시 1721년 - 임창 남해 절도에 유배됨
활동 시기/일시 1722년 - 임창 임인무옥 때 한양으로 잡혀옴
몰년 시기/일시 1723년연표보기 - 임창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25년 - 임창 지평 추증
추모 시기/일시 1727년 - 임창 정미환국으로 다시 죄인 명부에 오름
추모 시기/일시 1801년 - 임창 증직 회복
추모 시기/일시 1857년연표보기 - 임창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 시호 충정을 받음
추모 시기/일시 1858년연표보기 - 임창 조카 임징하와 함께 독성서사에 배향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임창 묘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 지도보기 신방골
사당|배향지 독성서원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 지도보기
성격 지사
성별
본관 풍천
대표 관직|경력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지사.

[개설]

임창(任敞)[1652~1723]은 숙종의 계비(繼妃)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되고 처형당한 재야 선비이다.

[가계]

임창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 출신으로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회이(晦而), 호는 강개옹(慷慨翁)이다. 증조할아버지 사예(司藝) 임희지(任羲之) 때 아산으로 들어왔고, 할아버지는 임환(任喚), 아버지는 임홍정(任弘挺),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아들은 임두하(任斗夏)이다.

[활동 사항]

임창은 벼슬에 뜻이 없어 재야 선비로 지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쫓겨났던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1694년(숙종 20) 복위되었다가 1701년(숙종 27) 세상을 떠나자 대궐 앞에서 통곡하며 장희빈(張禧嬪)과 남인(南人)들의 흉계로 인현왕후가 죽은 것이니 이런 사정을 종묘(宗廟)에 고하고 그들을 엄벌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숙종이 ‘옳지 못한 일을 참지 못하는 선비’라는 의미로 강개사(慷慨士)라는 포장을 내렸지만, 이 일로 1702년(숙종 28) 전라도 나주로 유배되었다. 1703년(숙종 29) 아들 임두하가 북을 쳐서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져 풀려났다. 하지만 1721년(경종 원년) 다시 남해 절도(絶島)에 유배되었다가, 1722년(경종 2) 남인들이 일으킨 임인무옥(壬寅誣獄) 때 한양으로 잡혀와서 고문 끝에 처형당했다.

[묘소]

임창의 묘소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 신방골에 있다. 이조참판 민병승(閔丙承)이 짓고 후손이 덧붙여 쓴 신도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임창은 1725년(영조 1) 죄에서 풀려 지평(持平)에 추증되었으나, 1727년(영조 3)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취소되어 다시 죄인 명부에 올랐다가 1801년(순조 1) 증직(贈職)이 회복되었다. 1857년(철종 8)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정(忠定)을 시호로 받았다. 1858년(철종 9) 5촌 조카 서재(西齋) 임징하(任徵夏)와 함께 염치읍 동정리 독성서사(獨醒書社)에 배향되었다. 독성서사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2004년 후손들이 독성서원으로 복설(復設)하여 다시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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