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18
한자 李敏求
영어공식명칭 Lee Mingu
이칭/별칭 자시(子時),동주(東洲),관해(觀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9년연표보기 - 이민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09년 - 이민구 사마시에 수석 입격
활동 시기/일시 1612년 - 이민구 증광문과에 장원급제
활동 시기/일시 1622년 - 이민구 지평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3년 - 이민구 선위사로 부산에 내려가 일본 사신 접대, 사가독서를 함
활동 시기/일시 1624년 - 이민구 도원수 장만의 종사관으로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움
활동 시기/일시 1627년 - 이민구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모시고 남쪽으로 난을 피함, 승지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6년 - 이민구 충청도 아산으로 유배되었다가 평안도 영변으로 이배됨
활동 시기/일시 1649년 - 이민구 해배
몰년 시기/일시 1670년연표보기 - 이민구 사망
성격 문관
성별
본관 전주
대표 관직|경력 도승지|예조참판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에 유배되었던 문신.

[개설]

이민구(李敏求)[1589~1670]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직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로 충청도 아산에 유배되었다가 평안도 영변으로 옮겨졌다. 문장에 뛰어나고 사부(詞賦)에 능했으며, 평생의 저술이 4,000여 권이나 되었으나 전쟁으로 인한 화재에 거의 불타버렸다.

[가계]

이민구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洲)·관해(觀海)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이수광(李睡光)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1609년(광해군 1) 사마시(司馬試)에 수석으로 입격(入格)하였고,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수찬(修撰)이 되었다. 예조좌랑, 병조좌랑을 거쳐 1622년(광해군 14) 지평(持平)이 되었다. 1623년(광해군 15) 선위사(宣慰使)로 부산에 내려가 일본 사신을 접대하고 돌아왔으며, 문재(文才)가 뛰어난 관료 10명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유능한 젊은 문신들을 뽑아 휴가를 주어 독서당에서 공부하게 하던 일]를 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의 종사관이 되어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모시고 남쪽으로 난을 피했다가 그해 승지가 되었고, 이어 임천군수로 나갔다. 잠시 외직으로 나갔다가 이조참판을 역임하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도검찰부사(江都檢察副使)가 되었다. 왕을 강화에 모시기 위해 배편을 준비하였으나, 적군의 진격이 빨라 왕이 부득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서 소임을 완수할 수 없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유배되었다가 1649년(효종 즉위년) 해배(解配)된 후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학문과 저술]

저서에 『동주집(東州集)』, 『독사수필(讀史隨筆)』, 『아성록(牙城錄)』 등이 있다. 『아성록』에 아산 유배 때에 지은 시 271수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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