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08
한자 姜鶴年
영어공식명칭 Kang Haknyeon
이칭/별칭 자구(子久),복천(復泉),자운(紫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여송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5년연표보기 - 강학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09년 - 강학년 생원시에 입격
활동 시기/일시 1624년연표보기 - 강학년 이괄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로 피난할 때 천안으로 가서 왕을 맞이함
활동 시기/일시 1626년 - 강학년 세자익위사 사어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7년연표보기 - 강학년 신령현감에 임명, 후금과의 화의 반대 상소를 올림
활동 시기/일시 1632년 - 강학년 사예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33년 - 강학년 사업 겸 지평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4년연표보기 - 강학년 장령에 임명, 공신들에 의한 정치 폐단 상소로 파직당함, 은진 유배
활동 시기/일시 1635년 - 강학년 은진 해배
몰년 시기/일시 1647년연표보기 - 강학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54년 - 강학년 대사헌 추증
출생지 한산 숭문동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
거주|이주지 거주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
묘소|단소 강학년 묘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정퇴서원지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용호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회덕동
성격 문관
성별
본관 진주
대표 관직|경력 세자익위사 사어|지평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에서 활동한 문신.

[개설]

강학년(姜鶴年)[1585~1647]은 초서에 뛰어났으며, 의를 내세워 선비들의 추앙을 받아 온양[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의 정퇴서원(靜退書院)과 회덕[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회덕동]의 용호사(龍湖祠)에 배향되었다.

[가계]

강학년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구(子久), 호는 복천(復泉)·자운(紫雲)이다.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15세손으로 외가인 서천군 한산 숭문동[현재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에서 출생하였다. 13세에 본가인 회덕 자운골[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로 돌아갔다. 할아버지는 강민첨의 13세손 강운상(姜雲祥)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강첨(姜籤)이다. 외할아버지는 고령신씨(高靈申氏) 신담(申湛)이다.

‘복천’ 또는 ‘자운’이라는 호는 강학년의 출생 설화와 관련이 있다. 어머니 한산이씨(韓山李氏)가 강학년을 잉태하였을 때 말라 버렸던 자운골[자운곡(紫雲谷), 잔골]의 샘이 솟구쳤다고 하며, 강학년이 태어날 때 붉은 구름이 집을 에워쌌다 하여 ‘복천’ 또는 ‘자운’이라 하였다. 대전광역시 대덕부 신탄진동에는 강학년의 본가가 보존되어 있으며, 안채가 슬래브집으로 개축되었으나 당시의 초석으로 보이는 몇 개의 주춧돌과 일부의 목재가 재사용되었다.

[활동 사항]

1609년(광해군 1) 생원시에 입격(入格)하였으나, 병이 잦아 출사를 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며 은거하였다. 광해군 말년에는 정치가 문란한 데다 부친상을 당하여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숨어 살았다. 1623년(인조 1) 최명길(崔明吉)의 추천으로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연기현감에 임명되었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로 피난할 때에 강학년은 천안으로 가서 왕을 맞이하였다. 진천현감이 되었으나 두 달 만에 다시 사직하고 돌아왔다가, 1626년(인조 4)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사어(司禦)가 되었다. 이듬해 신령현감에 임명되어 부임하려 할 때 후금이 침입하여 조정에서 화의(和議)를 논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돌아와 오랑캐와 화의할 수 없음을 상소하였다. 1632년 사예(司藝), 이듬해 사업(司業)으로 지평(持平)을 겸하였다. 1634년(인조 12) 장령(掌令)이 되어 공신들에 의한 정치의 폐단을 상소하여 파직되어 은진[현재 충청남도 논산시]으로 유배되었다가 일 년 만에 풀려났다. 1647년(인조 25) 63세로 사망하였다.

[묘소]

강학년의 묘소는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에 있다. 허목(許穆)이 지은 묘지명(墓誌銘)이 있다.

[상훈과 추모]

1654년(효종 5) 홍명하(洪命夏)의 상소로 신원되었으며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온양의 정퇴서원과 회덕의 용호사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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