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03
한자 任徵夏
영어공식명칭 Im Jingha
이칭/별칭 성능(聖能),서재(西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교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87년연표보기 - 임징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13년 - 임징하 진사시, 생원시 입격
활동 시기/일시 1714년 - 임징하 증광문과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17년 - 임징하 가주서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20년 - 임징하 신임사화로 파직
활동 시기/일시 1725년 - 임징하 사서, 정언을 거쳐 장령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26년 - 임징하 만언소를 올려 탕평책 반대, 평안도 순안에 유배됨
활동 시기/일시 1727년 - 임징하 제주에 위리안치
활동 시기/일시 1729년 - 임징하 역모죄로 친국을 받음
몰년 시기/일시 1730년연표보기 - 임징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76년 - 임징하 신원 복직
추모 시기/일시 1809년 - 임징하 이조참판 추증
추모 시기/일시 1844년 - 임징하 문집 『서재집』 간행
추모 시기/일시 1862년 - 임징하 유허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883년 - 임징하 이조판서 증직
추모 시기/일시 1910년 - 임징하 충헌 시호 받음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임징하 묘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독성서사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 179 지도보기
성격 문관
성별
본관 풍천
대표 관직|경력 정언|장령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개설]

임징하(任徵夏)[1687~1730]는 숙종, 경종, 영조 때의 노론(老論) 문신 관료이며, 정미환국(丁未換局) 이후 역모로 몰려 옥사하였다.

[가계]

임징하의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성능(聖能), 호는 서재(西齋)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조할아버지 사예(司藝) 임희지(任羲之) 때 아산 지역으로 들어왔으며, 증조할아버지는 임환(任喚),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임홍망(任弘望)이다. 아버지는 집의(執義) 임형(任泂)이고,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 이의저(李義著)의 딸이다. 부인은 광산김씨(光山金氏)로 숙종의 정비(正妃) 인경왕후의 오빠인 호조판서 김진구(金鎭龜)의 딸이다. 문인으로 유명한 북헌(北軒) 김춘택(金春澤)이 처남이다. 아들 임시구(任時九)와 임시팔(任時八)이 있다.

[활동 사항]

1713년(숙종 39) 진사시와 생원시에 모두 입격(入格)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급제하였다. 1717년(숙종 43) 가주서(假注書)로 시작하여 경종 때 지평(持平),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등을 지내다가 소론(少論)이 정권을 잡자 신임사화(辛壬士禍)[신임옥사(辛壬獄事)]로 몰려났다. 1725년(영조 1) 노론이 집권하자 사서(司書), 정언(正言)을 거쳐 장령(掌令)에 올랐다. 1726년(영조 2)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탕평책을 반대하고 신임사화를 일으킨 소론의 제거를 주장하다가 평안도 순안에 유배되었고,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집권하자 제주에 위리안치(圍籬安置)[죄인을 귀양살이하는 곳에서 나다니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어 두는 일]되었다. 1729년(영조 5) 한양에 끌려와 역모죄로 친국(親鞠)을 받았지만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고 고문 끝에 옥사하였다.

[학문과 저술]

임징하의 5대손 임헌회(任憲晦)가 1844년(헌종 10) 활자로 찍어낸 『서재집(西齋集)』이 있다. 권두에 조인영(趙寅永)과 홍직필(洪直弼)의 서문이 있으며, 권말에 임헌회의 발문(跋文)이 있다. 유배 생활의 어려움을 노래한 「안정록(安定錄)」, 「남천록(南遷錄)」, 「감산록(柑山錄)」 등이 유명하다.

[묘소]

임징하의 묘소는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에 있으며,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비문을 쓴 신도비가 세워졌다.

[상훈과 추모]

1776년(정조 1) 신원(伸寃) 복직(復職)되었으며, 1809년(순조 9)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883년(고종 20) 이조판서에 다시 추층되었고, 1910년(순종 3) 충헌(忠憲)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862년(철종 13) 제주목사였던 5세손 임헌대(任憲大)가 임징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임징하 유허비(遺墟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에 있고,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독성서사(獨醒書社)[독성서원(獨醒書院)]에 모셔졌다. 금석문은 ‘서재임선생적려유허비(西齋任先生謫廬遺虛碑)’이며, 임헌대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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