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597
한자 趙萬永永世不忘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영인로96번길 12-5[아산리 235-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승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776년 - 조만영 출생
설립 시기/일시 1843년연표보기 - 조만영 영세불망비 건립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46년 - 조만영 사망
이전 시기/일시 1911년연표보기 - 조만영 영세불망비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로 이전
현 소재지 조만영 영세불망비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영인로96번길 12-5[아산리 235-6]지도보기
성격 송덕비
양식 비좌개석
관련 인물 조만영
재질 화강석
크기(높이,너비,두께) 166㎝[높이]|54.8㎝[너비]|28㎝[두께]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만영의 송덕비.

[건립 경위]

조만영(趙萬永)[1776~184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윤경(胤卿), 호는 석애(石厓)이다. 1813년(순조 13)에 증광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1819년 부사직으로 있을 때 당시 7세인 딸이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되었다. 이후 이조참의, 대사성, 금위대장을 거쳐 여러 판서를 지내면서 실력자로 부상하고 풍양조씨 세도의 기초를 마련하여 안동김씨 세력과 경쟁을 벌였다. 1839년(헌종 5) 풍양조씨의 세도를 확립하여 5~6년간 정권을 쥐고 군사권을 장악하여 일족이 세상에 이름을 드높였다. 1845년(헌종 11) 궤장을 하사받고 영돈녕부사가 되는 영예를 누렸으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신정왕후가 유년 시절 세자빈으로 책봉될 당시 조만영은 한동안 영인면 아산리 양지말에 거주하였으며, 영인면 일대에 이미 많은 토지를 소유하였고 토지 관리인도 여럿 두었던 실력자였다. 조만영은 딸이 세자빈이 된 이후에는 곧 지역을 떠났고, 중앙 정계에서 세도가로 활약할 당시 조정에 건의하여 현 영인면 지역이 시혜를 받을 수 있게 애썼다. 아산현 관아 앞에 조만영의 행적을 칭송하는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세우게 되었는데, 여러 송덕비 중에서 조만영 영세불망비는 풍양조씨 문중의 토지로 알려진 현재 위치에 1911년 따로 비각을 세우고 옮겨 세웠다.

[위치]

조만영 영세불망비는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영인로96번길 12-5[아산리 235-6]에 있다. 영인면 소재지인 아산리 북쪽 상가 끝자락 민가 건물 사이에 있다. 영인면사무소 앞에서 북서쪽으로 180m 되는 지점에서 오른쪽 옛 시장길을 100m 간 뒤 오른쪽 골목으로 20m 가면 왼쪽에 비각이 보인다. 원래 남동쪽 직선거리 약 400m 지점의 아산현 관아 앞에 세워졌으나 아산공립보통학교[현재 영인초등학교]가 들어서고 관아 주변이 변화되면서 1911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형태]

조만영 영세불망비는 비좌개석 형태이며 화강석으로 조성되었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높이 166㎝, 너비 54.8㎝, 두께 28㎝의 비신을 세우고 팔작지붕 형태의 머릿돌을 올렸다. 비각을 세워 비석을 보호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폐가처럼 무너진 채 서 있던 비각을 최근에 중수하였다. 비각 우측 자연석 표면에는 비석을 옮긴 시기를 새겨 놓았다.

[금석문]

조만영 영세불망비 비신 가운데에 ‘영돈풍은부원군조공만영영세불망비(領敦豊恩府院君趙公萬永永世不忘碑)’라 새겨져 있고, 좌우에 ‘반조시설 수시건백 혜흡고자 영견조막(扳曺施設隨時建白惠洽枯胔永蠲漕瘼)’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비각 우측 자연석에는 ‘명치사십사년오월구일 이건 신해(明治四十四年五月九日移建辛亥)’라 새겨져 있다.

[현황]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의 아산현 관아 터에 있던 비석은 영인초등학교의 개교와 1941년 영인면사무소의 이전 건립에 따라 옮기게 되었지만, 조만영 영세불망비는 미리 옮겨졌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별도로 자리하고 있다. 상가가 들어선 좁은 골목의 뒤편에 있으므로 찾기 어렵고 주변 환경도 정돈되지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만영 영세불망비는 구체적으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예컨대 조운 제도나 공납의 개선으로 추정되는 어떤 일로 아산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어 세워진 송덕비이다. 넓게 보면 19세기 세도정치 시기의 세도가였던 풍양조씨 조만영과 후에 ‘조대비’로 일컬어진 신정왕후의 역사적 자취와 관련하여 그 의미를 되새길 수도 있다. 신정왕후의 세자빈 간택 당시의 일화와 중앙 무대에서의 실력자로 부상하는 배경과 결과를 생각해볼 수 있는 아산의 문화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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