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550
한자 細橋里山城
영어공식명칭 Segyo-ri San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2리
집필자 서정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세교리산성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2리 지도보기
성격 산성
양식 테뫼식 토축 산성
크기(높이,길이,둘레) 495m[둘레]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있는 시기 미상의 토축 산성.

[개설]

세교리산성(細橋里山城)배방읍 세교2리 안골마을 바로 뒤에 솟아 있는 높이 100m의 성재산[대성산]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다.

[건립 경위]

세교리산성은 아직까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축조 경위도 정확히 알기 어렵다. 전언에 의하면 동학농민혁명세교리산성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지만 세교리산성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국도 21호선 온천대로의 장재지하차도 동쪽 천안 방면 200여m 지점에서 오른쪽[남쪽]으로 접어들어 휴대세교길을 따라 2.7㎞ 가면 세교2리 안골마을에 다다른다. 성의 동쪽으로는 전망이 좋지 못하나 북쪽으로는 전망이 좋아, 곡교천의 지류인 천안천과 탕정평야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서쪽으로도 천안천과 더불어 곡교천의 지류가 되고 있는 봉강천과 주변의 평야,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배방산성이 건너다보인다. 남쪽 역시 봉강천과 주변의 평야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요충지로서 산성의 입지조건이 잘 갖추어진 곳이다.

[형태]

세교리산성은 성재산 정상부를 둘러 축조한 테뫼식 토성(土城)이다. 산의 모양에 따라 대략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길쭉한 형태이며, 성벽 전체의 둘레는 495m이다. 성벽 축조는 지형에 따라 판축(版築) 기법으로 흙을 쌓아 올려 축조한 곳도 있고 삭토(削土), 즉 흙을 깎아내어 성벽을 축조한 구간도 있다. 판축이란 토성을 쌓을 때 양쪽에 판자를 대고 그 사이에 흙을 넣고 공이로 단단하게 다져서 담이나 성벽을 쌓는 기법이다. 문지나 건물지 등 부대시설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황]

세교리산성은 토성이어서 오랜 기간에 걸친 파손으로 흔적이 남아 있는 구간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성내는 밭으로 개간되거나 묘지가 조성되어 상당 부분이 변형되고 있으며, 그나마 남아 있던 성벽의 흔적[토루(土壘)]도 계속 훼손되고 있다. 한동안 삼국시대 토기 조각이 많이 발견되었으나 최근에는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세교리산성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관련된 여러 사항이 거의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성벽 대부분이 파손되거나 유실되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과거에 수습되었던 회색 경질토기(硬質土器) 등의 유물을 통해 백제시대에 축조된 산성이며, 주로 곡교천 주변의 감시와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교리산성은 전망이 좋아 주변이 잘 보이는 곳이어서 1919년 3·1운동 당시 세교리 주민들이 세교리산성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부르기도 하였던 의미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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