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723
한자 李齊衡
영어공식명칭 Lee Jehyeong
이칭/별칭 원옥(元玉)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병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5년연표보기 - 이제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3년 - 이제형 소과에 입격
활동 시기/일시 1639년 - 이제형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42년 - 이제형 지평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5년 - 이제형 정언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9년 - 이제형 암행어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53년 - 이제형 장령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54년 - 이제형 사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옴
활동 시기/일시 1655년~1663년 - 이제형 사간원헌납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58년 - 이제형 사헌부장령 재직 시 윤선도의 삭탈관직을 주청함
몰년 시기/일시 1663년연표보기 - 이제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26년 - 이제형 장천사에 아들 이단석과 함께 추배
성격 문관
성별
본관 전주
대표 관직|경력 장령|사간원헌납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개설]

이제형(李齊衡)[1605~1663]은 1658년(효종 9)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있을 때 윤선도(尹善道)가 올린 상소의 잘못된 점을 일일이 지적하여 명백하게 분별할 것을 효종에게 아뢰고, 이어서 윤선도의 관직을 삭탈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을 주청하기도 할 만큼 강직하였다.

[가계]

이제형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옥(元玉)이다. 종친인 금천부정(錦川副正) 이보(李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입향조(入鄕祖)인 성균관장의(成均館掌議) 이생인(李生寅)이다. 어머니는 상주김씨(尙州金氏)로 좌의정 김귀영(金貴榮)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성씨(昌寧成氏) 성대수(成大受)의 딸과 의령남씨(宜寧南氏) 남두명(南斗明)의 딸이다. 형조참판을 지낸 이단석(李端錫)의 아버지이다.

[활동 사항]

1633년(인조 11) 소과(小科)에 입격(入格)하여 생원이 되었고, 1639년(인조 17)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42년(인조 20) 지평(持平)이 되었고, 1645년(인조 23) 정언(正言)이 되었다. 1649년(효종 1) 암행어사에 제수되어 효종의 복명을 받고 현지에 파견되었다. 1653년(효종 4) 장령(掌令)이 되었고, 이듬해인 1654년(효종 5) 사은사(謝恩使)로 정사(正使) 구인후(具仁垕), 부사(副使) 조계원(趙啓遠)과 함께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특히 1655년(효종 6)부터 1663년(현종 4)까지 계속하여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을 역임하면서 청요직(淸要職)을 지냈다.

[상훈과 추모]

전라남도 영광의 장천사(長川祠)에 심우신(沈友信), 이단석과 함께 배향되었다. 청백(淸白)으로 이조참판과 제학(提學)에 추증되었다. 장천사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때 철폐되었으며, 1990년 장천사를 복원하면서 명칭을 ‘표의사(彪義祠)’로 변경하였다. 당시 이제형·이단석 부자의 위패는 후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함께 배향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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