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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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謹妻昌原黄氏墓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the Jeonggeun's Wife Changwon Hwang Cl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화정동 산90-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권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76년 - 정근 처 창원 황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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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35년 - 정근 처 창원 황씨 사망 |
개축 시기/일시 | 1731년 2월 20일 - 정근 처 창원 황씨 묘역 정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7년 11월 21일 - 추곡 정제두 선생 유허비 건립 |
현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화정동 산90-4 |
성격 | 묘소 |
관련 인물 | 황치경|성자제|정근|정광윤|정유성|정구응|정설|덕양 기씨|정창징|정상징|정제두|정제현|정제태 |
관리자 | 정한일 |
[정의]
경기도 시흥시 화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근의 부인 창원 황씨 무덤.
[개설]
정근 처 창원 황씨(鄭謹妻昌原黄氏)[1576~1635] 묘(墓)는 정몽주(鄭夢周)의 5대손 정광윤(鄭光胤) 묘와 시아주버니 정열(鄭說) 묘 아래쪽 서편에 있다. 창원 황씨는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 정근(鄭謹)의 두 번째 부인이다. 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황치경(黃致敬)이고, 어머니는 성자제(成子濟)의 딸이다. 아들 정유성(鄭維城)은 현종 재위 기간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양명학자 정제두(鄭齊斗)의 증조할머니가 된다.
[위치]
정근 처 창원 황씨 묘는 경기도 시흥시 화정동 산90-4에 있다. 능곡동에서 화정동으로 가는 능곡로 변 우남퍼스트빌 1차 맞은편 동측의 언덕에 있다.
[변천]
정근 처 창원 황씨 묘가 있는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추곡(楸谷)]은 정몽주의 5대손인 정광윤의 사패지(賜牌紙)[임금이 내려 준 논밭]로서 영일 정씨(迎日鄭氏)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 포은공파(圃隱公派), 충정공파(忠貞公派)의 400년 세장지(世葬地)이다. 정제두는 이곳에서 1689년(숙종 15)부터 20년간 살았다. 이후 강화로 옮겨가 1731년(영조 7) 2월 20일 추곡에 들러 정근 처 창원 황씨 묘의 지세(地勢)가 기울어져서 곧 무너질까 염려되어 다른 곳으로 이장하려다 종손(宗孫)이 병이 나자 묘소를 정비하는 것에서 마무리하였다. 2000년 조사 때만 해도 묘 앞에 좌우 한 쌍의 동자석이 있었는데, 2015년 현장 조사에서 도난을 당한 것을 확인하였다. 더욱이 10여 년 전에는 봉분 절반이 파헤쳐지는 도굴도 당했다.
[형태]
정근 처 창원 황씨 묘는 혼유석(魂遊石), 상석, 향로석, 높이 1.63m의 문인석 등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문인석은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하고 몸집이 각진 것이 특징이다. 묘역의 좌측에는 장방형의 받침돌에 월두형(月頭形) 비신(碑身)을 갖춘 방부원수(方趺圓首) 양식의 높이 1.51m의 백(白)대리석 묘표(墓表)가 서 있다.
[금석문]
높이 1.28m의 비신 앞면에는 '증정경부인 창원 황씨지묘(贈貞敬夫人昌原黃氏之墓)'라고 써 놓았다. 비석 뒷면의 음기(陰記)는 증손자 정제두가 짓고 '숭정후 갑자[1684년] 8월 □일(崇禎後甲子八月□日)'이라고 되어 있다. 음기의 표제(表題)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으며 서자(書者)는 미상이다.
상석의 앞면에 각자된 '증정경부인 창원 황씨묘 우의정 충정공 휘유성지비(贈貞敬夫人昌原黃氏墓右議政忠貞公諱維城之妣)'라는 기사(記寫)는 확인되나 좌우면에 새겨진 글씨는 매몰되어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묘표 뒷면에는 '안산군 마하산서 추곡좌(安山郡磨河山西楸谷左)'라고 음기된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이곳이 '추곡', 즉 가래울이라고 정확히 밝히고 있다. 또한 '제두등 경식비우 묘석(齊斗等敬識此于墓石)'이란 음기를 통해 정제두와 후손들이 비석을 세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정근 처 창원 황씨 묘와 묘비를 통해 조선시대 분묘의 형태를 잘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묘표에 음기된 내용은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마을과 정제두의 연고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