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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땅, 서창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1361
한자 自然-造化-理想的-西倉-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위치 서창마을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마을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서창마을의 모든 것.

[개설]

서창마을은 과거에 머문 듯한 마을로 사천리(斜川里)적상산(赤裳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임진왜란 때 형성되었다고 전해지는 피난지지(避難之地)이기도 한데, 특히 서창마을에서는 할아버지 산신당과 고석 할매당이 모셔졌고 풍수 비보적인 역할을 하는 마을 숲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적상산 기슭에 자리 잡은 서창마을]

사천리는 본래 유가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길왕(吉旺) 마을, 내사(內斜) 마을 일부를 병합하여 새냇들의 이름을 따서 ‘사천리’라 하고 적상면에 편입되었다. 자연 마을로 구억 마을, 성내 마을, 내서창마을, 외서창마을, 신대 마을, 길왕 마을 등이 있다. 서창마을임진왜란 때 피난 터로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적상-무주 간 국도 제19호선의 오른쪽에 자리한 신대 마을에서 적상산 방향으로 좁은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면 서창 마을과 마주할 수 있다. 외부에서 완전히 숨어 있는 피난지지라 할 만하다. 무주군 일원에서는 이러한 십승지지(十勝之地)와 관련한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흔히 십승지지는 병화와 흉년이 없는 피난·보신(保身)의 땅을 일컫는다. 이는 민중의 절실함이 담긴 풍수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창마을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서창마을은 붉은 치마 같은 바위가 있어 이름 붙여진 적상산이 품고 있는 여러 마을 중 하나이며, 과거 서쪽에 창고가 있었다는 곳에 마을이 조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서창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관한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가 있어서 긴밀한 관련을 맺기도 하였다.

[마을은 작은 국가, 마을의 공간 구조]

마을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떠한 구조로 되어 있을까? 마을은 혈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작은 국가와도 같은 공동체적인 집단을 의미한다. 마을은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마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모든 영역이 갖추어진 곳이다. 즉 정치면에서 촌장 중심의 의사 논의 기구와 결정 조직, 경제면에서 두레 조직[노동 공동체- 두레의 공동 노동의 성과는 개별 노동의 합보다 훨씬 크고 노동 능률과 노동 생산성도 높다], 사회면에서 여러 금기와 도덕, 윤리 조직, 문화면에서 놀이 조직, 교육면에서 서당이라는 교육 기관, 종교면에서 마을 굿 등이 갖추어져 있어 가히 하나의 작은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전통 마을의 공간 구조는 서장, 중장, 종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서장은 마을의 동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동구에는 경계 표시나 수호신으로 장승이나 짐대가 놓인다. 또는 바위에 의미가 담긴 글씨를 큼직하게 새겨 놓기도 한다. 마을 경관이 좋다는 의미나 마을 이름을 새긴 바위가 나타난다. 새로운 공간으로 진행하는 것을 암시한다. 또 이곳에는 돌탑, 선돌, 돌 거북, 마을 숲, 당산나무 등이 있다. 이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로 외부 사람들을 감시하는 기능도 한다. 큰길에서 마을로 통하는 길을 일직선상으로 새롭게 내었는데,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새마을 길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전에는 마을이 큰길 가에서 보이지 않았다. 새마을 길보다 멀지만 굽이굽이 돌아가면서 무엇이 나타날까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고향을 찾아가는 마음처럼 설레는 길을 휘감아 돌아서 마을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보면 그림 같은 마을 전경이 펼쳐진다. 중장은 마을에 보이는 효자비, 열녀비와 같은 비각들이 세워지고 또 고목에 둘러싸인 오솔길, 돌담장, 마을 공동 샘, 빨래터가 설치되고 마을이 중심 시설물인 모정이 나타난다. 중장은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효자비, 열녀비의 한(恨)을 살아간 사람들의 애틋한 생애와는 상관없이 마을의 자부심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마을 사람들의 생명수인 공동 샘, 마을의 대소사와 모든 정보가 소통되는 빨래터와 모정, 마을이 재생산되는 가옥들이 있는 곳이다.

종장은 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된 가옥에서부터 마을이 끝나는 곳이다. 중심 가옥에서 길은 자연스럽게 굴곡을 이루어 마을 뒷산으로 이어지며 길 자체가 마을 뒷산이라는 대자연에 흡수된다. 마을은 자연의 품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은 촌락, 동촌 등으로도 불리는데 여러 이름 중 역시 ‘마을’이 제일 정감 어린 명칭이다.

[마을 숲의 조성 목적과 의미]

마을 숲이란 자생하여 이루어진 산림이나 목재를 이용할 목적으로 가꾼 단순한 산야의 일반적인 숲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마을 숲은 마을의 역사, 문화, 신앙 등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보호 또는 유지되어 온 숲을 말한다. 마을 숲의 문화적 의미는 다양하다. 민속적으로는 마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고, 풍수지리적으로는 좋은 땅을 조성하는 구조물이며, 심미적으로는 풍치의 장소이다. 또한 휴식·집회·놀이·운동 등 여러 가지 활동의 터전이고, 바람과 홍수 등을 막아 마을을 보호하는 구조물이며, 마을의 영역을 결정하는 상징적 장소로서의 역할도 하는 문화 통합적 시설이다. 그래서 마을 숲은 다음의 계기로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몇몇 사람들이 떠돌다가 한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처음에 마을 입구가 허(虛)하여 방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몇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마음뿐이었고, 그렇다고 자리 잡은 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 많은 사람이 모여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마을에 큰 화재가 나서 마을이 완전히 황폐해졌다. 화재 이후 마을 사람들이 의논한 끝에 화재의 원인이 마을 입구로 부는 세찬 바람이었음이 밝혀졌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빨리 자라고 튼튼하여 바람을 막아낼 수 있는 나무를 심기로 결정하였다. 적게 심어도 효과가 충분한 자리를 선택해 심다 보니 수구(水口)가 좁은 곳에 심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들의 보호를 게을리 하지 않자 이후 화재가 줄고 별 걱정 없이 살게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마을 숲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마을 규칙을 만들어 감시했지만 훼손되는 일이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해결책으로 마을 숲을 공동의 소유로 삼고 여기에 신앙성과 신성성을 부여하였다. 마을 숲의 나무를 베면 죽거나 다친다는 신성성과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야 마을이 평안해진다는 믿음이 부가된 것이다. 이후 마을 숲은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감안하면 마을 숲은 마을 사람들의 인식과 관련지어야 한다. 마을 숲의 개념 중 가장 중요한 점은 1차적으로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숲의 변화 과정은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긴밀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록 한 그루의 나무라 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마을 숲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마을 숲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마을 숲에는 현실적인 기능뿐 아니라 신앙성과 신성성도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마을 숲은 마을이 형성될 무렵 입지적으로 부족함이 있는 곳을 비보(裨補)하기 위해 조성되었으므로 거의 모든 마을에서 나타난다. 마을 숲은 일반적으로 수구막이 역할을 하며, 그 활용은 구체적으로 비보림(裨補林)과 엽승림(獵勝林)으로 구별된다. 비보림은 부족한 점을 인위적인 조작으로 보완하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이다. 엽승림에서 엽승은 풍수적으로 불길한 기운을 눌러서 제압한다는 의미이다. 엽승림은 불길한 요소가 있는 방향을 가로막아 불길한 기운이 마을에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서창마을 숲은 대부분 느티나무로 조성되어 있다. 마을 숲 중 가장 널리 분포하는 것은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뿌리 퍼짐이 좋고 오래 사는 나무 중 하나이며, 흔히 괴목(槐木)으로도 불린다. 괴(槐)는 느티나무 혹은 회화나무를 뜻하는 한자어인데, ‘목(木)’ 자와 ‘귀(鬼)’ 자가 합하여서 된 글자로 나무와 귀신이 함께 있는 상태 또는 그러한 사물을 뜻한다. 그러므로 ‘괴’라는 나무는 나무 귀신, 귀신 붙은 나무로도 해석한다. 따라서 ‘괴’라는 명칭의 나무는 토착 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는 신목(神木)인 것이다.

[비보 풍수(裨補風水) 장치로서의 서창마을 숲]

풍수지리 사상은 우리 겨레의 전통 지리학으로 민족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는 경험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음양론(陰陽論)과 오행설(五行說)을 기반으로 『주역(周易)』의 체계를 주요한 논리 구조로 삼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전통 지리 과학으로 추길 피흉(追吉避凶)을 목적으로 삼는 상지 기술학(相地技術學)이다. 이것이 후에 효의 관념이나 샤머니즘과 결합되어 이기적 속신으로 발전하기도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일종의 토지관의 표출이라고 말할 수 있다[최창조]. 그리고 우리 민족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독특한 풍수를 발전시켰는데, 그것이 비보 풍수이다.

비보란 자연적 성국(成局)의 결처(缺處)를 보(補)하여 인위적으로 길국(吉局)을 형성하는 것으로, 인간이 자연환경과 상생(相生), 조화 관계를 맺으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전통 지리 사상이다. 즉 비보 풍수는 결함이 있는 땅을 명당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명당 개념은 물질적, 정신적인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안정과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서창마을 숲은 마을을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마을의 뒤와 양 옆면은 산으로 둘러싸여 장풍의 형세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하지만 앞쪽이 문제이다. 가려 주는 둔덕이 전혀 없어 허전한 분위기를 마을 전체에 밀어 넣고 있는 형세이다. 이런 경우 마을 앞쪽에 비보책으로 마을 숲을 조성하게 된다. 풍수 지기론에 의하면 그것은 기(氣)가 흩어져 나가는 것을 방비한다는 의미이다. 마을 숲이 외부로 마을의 복이 흘러가는 것을 막아 주는 것이다. 또한 바람을 막아 화재막이 역할도 한 듯하다. 허한 기운을 막으려고 숲을 조성하였다고도 하는데, 이는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숲을 보존하고 때로 훼손되어 있으면 복원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이는 본래 마을 숲 조성이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공동체적인 삶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을 숲의 조성이 불안정한 땅을 안정감 있는 땅으로 만들기 위하여 허한 곳을 비보하는 데 목적에 있기 때문이다. 이후 마을 숲을 오랫동안 보호, 보존하기 위하여 여기에 신성성, 신앙성이 첨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연유로 마을 숲이 돌탑, 선돌 등과 결합되어 조성된 것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의식인 마을 제사로 계승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관념이 마을 사람들에게 짙게 남아 있다.

마을 숲이 오랫동안 유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숲이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마을의 공동 소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마을 땅이라고 한다. 마을 숲의 땅이나 나무를 팔려면 한 개인이 독단적으로 할 수 없고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호,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을 숲이 마을에서 수구막이로서 신성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 공동 소유라는 것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마을 숲을 얼마나 중요시했는가 알 수 있다. 심지어 서창 마을 숲은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면 운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생명이 흐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직도 서창 마을에서는 한여름에 울창한 마을 숲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땅, 서창마을]

우리 조상들은 풍수와 지리가 완벽한 자리를 찾아내는 술법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당이 되기에는 부족한 조건의 터를 인공적으로 보함으로써 제대로 된 삶터를 가꾸고자 노력해 왔다. 특히 마을 숲, 고석 할머니 신앙은 서창마을에서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왔던 마을 사람들의 대동적 공동체를 추구했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증표이다. 어떻게 보면 서창마을은 풍수적으로 대단히 불안전한 땅인지도 모른다. 불안전한 땅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하여 마을 숲을 조성하고, 거기에 더 나아가 고석 할머니를 조성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서창마을이야말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마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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