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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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사동 마을 |
집필자 | 김영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돗대나무 이야기」, 『무주군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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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돗대나무 이야기」,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돗대나무 이야기」, 『무주 군지』 중권에 수록 |
관련 지명 | 갈마골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사동 마을 |
성격 | 설화|영목 훼손담 |
주요 등장 인물 | 면장|마을 사람들 |
모티프 유형 | 돗대|영목 훼손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사동 마을에서 돗대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돗대나무 이야기」는 마을에서 돗대[돛대] 역할을 하는 당산나무를 베자 구렁이가 사라지고 마을이 황폐화되었다는 영목(靈木) 훼손담이다. 다시 미루나무를 심어 평화를 되찾았지만 삼백 년이 넘는 나무를 돗대나무라 부르는 것은 돛대처럼 마을의 운명을 저어 나가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돗대나무 이야기」는 1990년 무주군에서 편찬한 『무주 군지』에,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발행한 『내 고장 전설집』의 60~61쪽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채록 시기는 미상이다.
[내용]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사동 마을 뒤 갈마골에는 삼백 년이 넘은 나무 한 그루가 솟아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돗대나무라고 부르며 잘 가꾸며 보호했다. 마을이 평화로운 것은 모두 돗대나무 은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돗대나무가 면사무소 청사를 짓기 위한 목재로 선정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지만 면장의 간청에 어쩔 수 없어서 베는 것을 허락했다. 나무를 베기로 한 하루 전날, 돗대나무에 살던 까치가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나무를 베자, 나무 밑동에서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나와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이후 마을에는 재앙과 근심이 끊이지 않았다.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왔고 이웃의 인심도 흉흉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이 황폐화되는 것이 돗대나무를 베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돗대나무를 대신해 미루나무를 심었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으로 미루나무가 커 가면서 마을에는 다시 예전의 평화가 찾아왔고,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꺾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돗대나무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돗대’, ‘영목 훼손’ 등이다. 일반적으로 돛대는 배가 안정되게 운항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예로부터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무나 바위 등을 마을에 세워 마을을 안정시켰다.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사동 마을 돗대나무 역시 일종의 당산나무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돗대나무가 외적·물리적 힘에 의해 손상을 입어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하기 어렵게 되자 돗대나무를 대신해 미루나무를 심어 마을의 평화를 되찾았다. 「돗대나무 이야기」를 통해 당산나무 역할을 하는 돗대나무를 소중히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사동 마을 사람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