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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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溪書院 |
영어공식명칭 | Jukgeseowon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평장길 79[죽천리 1716-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 기관.
[위치]
죽계서원(竹溪書院)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1716-3번지[평장길 79]에 있다. 안성면 소재지에서 안성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좌측으로 평장 마을로 들어서는 갈림길이 나온다. 평장 마을로 들어서면 평장 마을 회관이 있으며, 길을 따라 마을을 통과하여 평장길 끝에 있다. 통영 대전 고속 도로 아래쪽을 통과하여 산 쪽으로 가면 있다.
[변천]
죽계서원은 1713년(숙종 39)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신(金侁)·장필무(張弼武)[1510~1574]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장의현(張義賢)[1533~1615]·장지현(張智賢)[1536~1593]·하정도(河呈道)·하형도(河亨道)·하현도(河顯道)를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다가, 1869년(고종 6)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다. 1905년(고종 42)에 하정도·하형도·하현도 3현의 위패를 백산 서원(柏山書院)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1972년에 서원을 다시 재건하였다. 현재 고려 때의 명신 충간공 참정 김신을 주향으로 하고 조선 중기의 삼부자 충신 장필무와 아들 장의현·장지현과 김희옹(金希雍)을 배향하고 있다.
김신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명신이다. 본관은 금산[또는 진례(進禮)]으로, 금산 김씨의 시조이다. 자는 윤직(倫直), 호는 낙천재(樂天齋),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낭장(郎將)을 지낸 왕연(王涓)의 사위이다. 지금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 평장 마을[당시 진례현]에서 출생하였다. 원(元)에서 많은 공을 세웠으며, 일본 토벌에도 참여하였다. 그 뒤 조정에서 사우(祠宇)를 지어 제사를 지냈다.
장필무는 조선 명종(明宗)과 선조(宣祖) 때의 무신이다. 자는 무부(武夫), 호는 백야(栢冶), 본관은 구례이다. 1543년(중종 38)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만포 첨사로 있을 때 여진족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벼슬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고, 병조 판서에 증직되었다. 장의현은 장필무의 아들이다. 자는 의숙(宜叔), 호는 오류정(五柳亭), 본관은 구례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공을 세우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장지현은 장필무의 아들이다.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당(三槐堂), 본관은 구례이다. 임진왜란 때 황간 추풍령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임진왜란 후에 병조 참의와 정려가 내려졌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정려를 세웠다가, 적상면 괴목리로 이건하였다.
김희옹은 조선 성종(成宗)과 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김욱(金郁), 할아버지는 성균 진사인 김경행(金敬行), 아버지는 부사과를 지낸 김여(金茹)이다. 외할아버지는 안동 권씨 권호인(權好仁)이다. 자는 화중(和中)이다. 성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군수를 지냈다. 경기 감사, 한성 판윤, 이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504년(연산군 10)에 왕의 부름에 세 차례 응하지 않아 강학손(姜鶴孫)·이천기(李天奇)·조수(曺壽) 등과 함께 전라남도 영광군 낙월면 죽도에 유배되었다. 묘는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에 있다. 장인은 함흥 이씨 이인화(李仁化)이다.
[형태]
관리사를 지나 문을 통과하면 좌측에 ‘죽계서원’이라는 강당이 있고, 우측으로 3칸의 내삼문(內三門)이 있으며, 내삼문을 통과하면 ‘죽계사(竹溪祠)’라는 사당이 있다. 죽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사당의 안쪽에는 정면에 세 개의 위패가 있고, 좌우측 방향으로 하나씩의 위패가 있다. 죽계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좌우로 방이 있고, 중앙 2칸은 대청이다. 대청에는 네 개의 현판이 있다.
묘정에는 죽계서원 묘정비(竹溪書院廟庭碑)가 있다. 관리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함석지붕이다. 부엌 1칸, 방 2칸으로 되어 있다. 관리사에 도착하기 전 우측으로 1905년(고종 42)에 송병순(宋秉珣)이 쓴 고려 참정 김공신 유허비(高麗參政金公侁遺墟碑)가 있다.
[현황]
향사일은 음력 3월 10일이다. 축문은 '충간공참정 김선생 양정공백야 장선생 청파 김선생 복이지효격천 정충보군 일체준봉 서직필분 자치춘계 근이 생폐예제 자성서품 식진명천 오유정 장선생 삼괴당 장선생 배 상향(忠簡公參政金先生襄貞公栢冶張先生淸波金先生伏以至孝格天貞忠報君一體遵奉黍稷苾芬玆値春季謹以牲幣醴齊粢盛庶品式陳明薦五柳亭張先生三槐堂張先生配尙饗)'이다. 김선 축문은 '독성격천 읍구복수 윤의지효 천고한주(篤誠格天揖軀復讐允矣至孝千古罕儔)'이다. 장필무 축문은 '충절 염조 적무심유 유풍늠연 가립나부(忠節廉操跡武心儒遺風凜然可立懦夫)'이다. 2017년 1월 현재, 사당과 내삼문의 지붕은 천막으로 덮어 놓았으며, 관리사는 비어 있다. 담장은 곳곳이 훼손된 상황이다. 구례 장씨(求禮張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원은 지방에 있던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과 유명인들에 대한 제사의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배향 인물은 지역의 유명 인물이나 문중 내 중요 인물이며 중국 유명 학자들의 위패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죽계서원에는 금산 김씨와 구례 장씨 세가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어 이들 가문의 선현 숭배와 충효 정신 배양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현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