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887 |
---|---|
한자 | 科學技術 |
영어공식명칭 | Science and Technology |
분야 | 정치·경제·사회/과학기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호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지역에서 연구·개발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연 과학·응용과학·공학 및 생산 기술.
[박정희 정권의 농업 과학화 정책]
박정희(朴政熙) 정권 집권 이후 한국 사회는 과학 입국(科學立國)과 근대화를 기치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과학기술에 기초한 근대화 전략은 농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5년 농협이 ‘새 농민 운동’을 선언하고, 그 3대 강령 중 하나로 ‘과학하는 농민’을 주창하였다. 농협에 따르면 과학하는 농민이란 부지런히 배우고 연구하여 영농과 생활을 합리화하는 농민을 의미하였다. 이 논리에 따르면 농민의 과학화는 농업의 과학화와 일상생활의 과학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에 부응하여 정부에서는 낡은 영농 방법을 버리고 과학적인 새 영농 기술을 적용하여 농촌 근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을 통해서 농촌 근대화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와 같이 농촌에서의 과학기술 도입은 국가에 의해 전략적으로 추진되었다.
[무주군 농업 기술의 도입 추이]
1960년대 중반 이후 농촌에 동력 분무기와 경운기가 보급되어 영농 기계화가 추진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다수확 품종으로 통일벼가 권장되었다. 통일벼의 보급과 함께 보온 못자리 설치가 시작되고, 화학 비료의 사용량이 증가하였다. 무주군 통계 연보를 보면, 1971년 무주 군내에는 경운기가 65대 보급되어 있었고, 1974년에는 210대, 1981년에는 1,057대로 늘어나고 있다. 또한 1981년에는 농업용 트랙터 2대가 등록되어 있었다. 한편 1971년에는 비료와 농약 살포를 위한 동력 분무기가 89대 등록되어 있었고, 1974년에는 229대, 1981년에는 4,481대로 늘어나고 있다. 이후 농업 기계화는 보다 급속하게 진전되었고, 2014년 현재 경운기 2,238대, 트랙터 817대, 콤바인 128대 등이 등록되어 있다.
1970년대 초반에는 화학 비료의 사용량도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1971년 약 2,000톤이던 무주군의 화학 비료 사용량이 1974년에는 약 3,200톤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영농 인구와 경지 면적이 감소함에 따라 1981년에는 2,500톤으로 감소했고, 2014년에는 1000톤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자료를 통해 확인되지는 않지만, 전라북도 농민의 영농 기록 등을 보면, 이 기간 동안 보온 못자리용이나 비닐하우스용 비닐의 소비가 급증한 것을 알 수 있다.
농업 기술의 발달이 농업 생산성 및 농민 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커짐에 따라 무주군 농업 기술 센터에서는 친환경 농업을 위한 미생물 배양 센터와 천마 재배 농가를 위한 종균 배양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작목별 적정 토양과 시비·농약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농업 분야의 연구 기능을 강화하여 농업 생산성 향상은 물론 우수한 품질의 농산물 생산을 위한 과학 영농 기술의 도입·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무주군 주민 생활의 과학화]
농촌 생활에 과학기술이 도입된다는 것은 곧 근대적 상품의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1971년의 통계를 보면 전라북도 무주군에 451대의 전화가 보급되어 있었는데, 이중 가정용이 121대이고, 업무용이 321대, 공중용이 9대였다. 1974년에는 714대로 늘어났는데, 이중 가정용은 222대로 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휴대 전화가 보급되면서 전화 보급 대수는 감소하고 있으며, 통계 항목에서 전화 보급 현황은 제외되었다.
1977년 인구수 기준 9.2% 수준이었던 전라북도 무주군의 상수도 보급률은 1981년 14%로 높아졌고, 2014년 현재 무주군 전체 상수도 보급률은 74.6%를 기록하고 있다. 전기 보급률은 1971년 31%에 머물렀는데, 1974년에는 60.2%로 약 두 배 가량 증가하였다. 이와 함께 1971년에 무주군에 36대 보급되어 있던 TV가 1974년에는 694대로 약 20배가량 증가하였다. 1971년에는 자동차에 관한 항목은 아예 없고 오토바이 보급 대수만 기록되어 있다. 오토바이는 1971년 41대에서 1974년 116대로 늘었고, 같은 기간 동안 자전거는 734대에서 1,764대로 늘었다. 1977년 통계부터 자동차 대수가 포함되었다. 1977년 승용과 화물, 자가용, 영업용, 관용을 모두 합해서 무주군에는 108대의 자동차가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고, 1981년에는 191대로 늘어났다. 2014년 현재 자동차는 11,346대의 등록 대수를 기록하여 무주군 전체 가구당 0.96대의 보급률을 보이고 있다.
전기 보급에 따라 TV와 전기밥솥,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의 소비가 증가했고, 상수도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가정 내의 화장실과 욕실의 구조가 변화하였다. 아울러 자동차의 보급이 늘면서 주민들의 교통수단이 바뀌고 주민들의 이동 거리가 늘어나게 되었다. ‘과학하는 농민’에서 시작된 농업의 기계화와 일상생활의 가전화 및 동력화는 이렇게 농촌 주민의 삶의 양식 전반을 바꿔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