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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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時代 |
영어공식명칭 | Iron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이종철 |
[정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철기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개설]
청동기 시대가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와 청동기를 표지로 하는 시대라면, 철기시대는 철기를 표지로 하는 시대이다.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고고학적 편년 체계로서 덴마크의 톰센(C. J. Thomsen)이 제안한 3시대법(三時代法)에 근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청동기의 발전과 철기의 등장 및 보편화의 시간 차가 공존하는 고고학적 맥락 속에서 초기 철기시대라는 용어가 제시되어 왔고, 현재에도 용어의 타당성에 대해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문화의 전개 과정이 한시적이고 획일적이며 단절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철기의 등장과 보편화의 과정을 철기시대로 이해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무주 지역의 철기시대]
우리나라의 철기시대는 기원전 300년을 전후하는 시기에 서북한 지역에서부터 중국 전국계(戰國系) 철기 문화가 출현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한반도는 여전히 좁은 놋단검[세형 동검]으로도 불리는 한국식 동검과 청동 거울, 청동 창 및 청동 투겁창, 청동 방울류 등 청동기 문화가 지속되고 있었다. 한반도에 도입된 철기 문화는 기원전 2세기 이후부터 철로 만든 도끼·화살촉·창·괭이·낫·반달칼과 같은 무구류와 농구류 등이 본격적으로 제작됨으로써 전국적인 분포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철기 문화의 배경 속에서 기원전 1세기 대부터는 고구려를 비롯한 삼한(三韓)이라는 역사적 정치체들이 한반도에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역사 시대로의 장을 열게 되었다. 청동기를 배경으로 성장·발전해 왔던 고조선은 준왕(準王) 대인 기원전 194년에 위만(衛滿)에게 쫒겨 한(韓)의 땅으로 남천(南遷)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원전 2세기 이전에 이미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는 한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점에서 남부 지역에 존재하였던 한은 청동기 문화의 지속과 철기 문화의 도입을 배경으로 성장하였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무주 지역의 철기시대는 고고학적·역사적으로 아직까지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한의 영역에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삼국 시대에 무주 지역은 부리현(富利縣)과 주계현(朱溪縣), 무풍현(茂豊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부리현과 주계현은 각각 백제의 두시이현(豆尸伊縣)과 적천현(赤川縣)이었고, 무풍현은 신라의 무산현(茂山縣)이었기 때문이다. 백제와 신라의 영역이 각각 마한(馬韓)과 진한(辰韓)을 모태로 한다는 점에서 삼한 시기까지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시기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유적이 무주군 안성면의 장기리 유물 산포지(場基里遺物散布地)4와 장기리 유물 산포지6인데 자료의 축적이 좀 더 필요하다. 따라서 아직까지 고고학적으로는 철기시대에 대한 유물이나 유구를 제시할 수 없는 바, 앞으로 지표 조사는 물론 발굴 조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