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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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赤城誌茂朱官府圖-茂朱官府幅員總圖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1898년 조병유가 편찬한 『적성지』에 수록된 무주부의 고지도.
[저자]
양주 군수이던 조병유(趙秉瑜)가 1896년에 무주 군수로 임명되어 편찬하기 시작하여, 3년 후인 1898년에 민술호(閔述鎬)[1838~1921]와 함께 완성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무주관부도(茂朱官府圖)」와 「무주관부폭원총도(茂朱官府幅員總圖)」는 조선 후기에 편찬된 지리지인 『적성지(赤城誌)』의 서문 다음에 수록된 고지도로, 1896년에 조병유가 편찬하기 시작하여 3년 후인 1898년에 완성하였다. 1989년 『조선 시대 사찬 읍지』 영인본에 수록되었다.
[형태/서지]
「무주관부도」와 「무주관부폭원총도」는 목판본(木版本)으로 인쇄되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무주관부도」는 무주 읍치를 중심으로 한 지도라는 점에서 무주부를 그린 고지도들과 차별성을 갖고 있다. 「무주관부폭원총도」는 무주부 전체의 개략적인 산천 배치와 관내의 소속 면들을 그려놓고 있다.
「무주관부도」는 이웃한 옥천계와 금산계를 기록하고, 동헌을 중심으로 남측을 향해서 볼 때 좌측에 객사와 향교, 우측에 사단[사직단], 북측에 여단이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해 '좌묘우사(左廟右社)'의 공간 배치 원리가 적용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진산 또는 주산인 향산(香山)[향로봉]을 배경으로 관아 앞으로 흐르는 남천이 그려져 있다. 동헌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루 앞으로는 동서 방향으로 도로가 넓게 나 있는 가운데 민가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무주의 대표적인 누정인 한풍루는 현재의 남대천 변에 위치하고 있어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그 자리에 복원한 것이다. 나중에 여러 곳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남대천 건너 당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고지도에서 무주 적산산성은 무주 읍치보다 크게 그려져 있으나, 이 지도에서는 우측 아래에 조그맣게 그려져 상대적인 위상이 낮게 표시되어 있다.
「무주관부폭원총도」는 무주부의 행정 구역도처럼 읍치는 간략하게 그리고 있으며 지세를 중심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무주관부도」와 차별성을 갖는다. 읍치를 '부읍(府邑)'이라고 표기하고 관내 소속 면들은 ‘북면, 신풍, 풍서, 풍동, 풍남, 서면, 유가, 일안, 이안, 횡천’이라고 적고 사각형의 테두리 안에 넣었다. 또한 무주부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들은 영동계, 옥천계, 금산계, 지례계, 거창계, 안의계, 장수계, 용담계 등으로 방위에 맞는 위치에 기록하였다. 무주 읍치와 적상산의 영역은 간단히 가옥 몇 채만 그려서 위치 정도만 표시하였으나, 산세와 하천은 비교적 많이 그려서 개략도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적성지』에 수록한 「무주관부폭원총도」는 무주부의 개략도로 산세와 행정 구역 정도만 알 수 있도록 그렸으며, 「무주관부도」는 무주 읍치를 중심으로 관아 주변을 자세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두 지도의 씀씀이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