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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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過弓裔故城 |
영어공식명칭 | Gwagungyegose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혁진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63년 - 「과궁예고성」 이수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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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28년 - 「과궁예고성」 이수광 사망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605년 - 「과궁예고성」 저술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634년 - 「과궁예고성」 이수광이 지은 『지봉집(芝峯集)』에 수록 |
배경 지역 | 풍천원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
성격 | 한시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이수광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일대에 있던 태봉국 철원성(泰封國鐵原城) 터를 지나며 지은 한시.
[개설]
「과궁예고성」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1605년 함경도 안변부사(安邊府使)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강원도 철원 지역을 지나면서 지은 한시이다. '태봉국 철원성(泰封國鐵原城)'은 궁예(弓裔)[?~918]가 건국한 태봉의 도성을 지칭한다. 태봉국 철원성은 905년에 궁예가 송악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긴 후 왕건(王建)[877∼943]에 의하여 폐위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현재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의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하고 있다. 저자인 이수광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다. 이수광은 조선 사회가 전기에서 후기로 변화하는 사회적 변동기에 새로운 사상적 전개 방향을 탐색하고 개척한 학자이자, 사회 변화와 더불어 나타난 실학파의 선구적 인물이다.
[구성]
「과궁예고성」은 칠언율시(七言律詩)로 구성되어 있으며, 1634년에 펴낸 이수광의 『지봉집(芝峯集)』에 실려 있다.
[내용]
궁왕웅무양삼한(弓王雄武攘三韓)[궁예왕의 위무는 한때 삼한을 차지하였는데]
시력교음경자잔(恃力驕淫竟自殘)[힘만 믿고 교만하다가 끝내 자멸하였다오]
당일단과공취이(當日但誇攻取易)[당일에 성공이 쉽다고 자랑만 하였으니]
말년수신수성난(末年誰信守成難)[말년에 수성이 어렵단 걸 어찌 믿었으랴]
철성대전황연고(鐵城臺殿荒煙古)[철성의 대전에는 연무가 해묵었고]
부양산천패기한(斧壤山川霸氣寒)[부양의 산천에는 패기가 싸늘하여라]
막견유허도소진(莫遣遺墟都掃盡)[이 옛터를 완전히 쓸어 없애지 마소]
영류은감후인간(永留殷鑑後人看)[길이 후인에게 은감을 남겨야 하니]
「과궁예고성」의 내용에서 은감(殷鑑)은 『시경(詩經)』에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아서 하후의 세대에 있느니라[殷鑑不遠 在夏后之世]”라고 한 데서 빌려온 말로, 은나라의 후손은 하나라가 멸망한 것을 거울로 삼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징]
「과궁예고성」은 철원 지역의 지명이 시어로 사용됨으로써 지역색이 잘 드러난다. ‘철성(鐵城)’은 철원의 옛 지명이고, ‘부양(斧壤)’은 철원 위에 위치한 평강현(平康縣)의 옛 이름이다.
[의의와 평가]
「과궁예고성」에는 태봉국 철원성 터를 보며 궁예의 교만함과 방탕함으로 멸망한 태봉의 역사를 잊지 말고 경계해야 한다는 이수광의 소회가 잘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