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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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原火田農謠 |
영어공식명칭 | Cheorwon Hwajeonnongyo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영식 |
[정의]
강원도 철원군에서 화전을 일구고 씨를 뿌리며 수확하던 때 부르던 노동요.
[개설]
철원화전농요는 강원도 철원 지역에 전승되는 농요로, 화전을 일구고 씨를 뿌리며 수확하던 때 불렀던 노래이다. 1988년 제6회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우수상을 받았다.
[채록/수집 상황]
철원화전농요의 노랫말은 1992년에 발행한 『철원군지』에 정리되어 있다. 2016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증편한국구비문학대계』에도 철원화전농요와 관련된 노래 일부가 「밭 일구는 소리」, 「콩 심는 소리」로 채록되어 있다. 처음 채록된 시기는 밝히지 않았으나 1988년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한 노래로 소개하고 있다.
[구성 및 형식]
철원화전농요가 1988년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할 당시에는 땅파기, 씨뿌리기, 김매기, 콩거두기, 타작 등 모두 다섯 마당으로 구성하였으나 타작 마당의 소리는 정리되어 있지 않다. 1994년 강원도에서 간행한 『강원의 전통 민속예술』을 보면 고노석, 고정환 등이 선소리를 하고, 자등리 마을 주민들이 소리를 받는 선후창 형식이었다
[내용]
철원화전농요에는 땅파기, 씨뿌리기, 김매기, 콩거두기 등 네 가지 노동에 따른 노래가 전하고 있다. 이들 노래의 노랫말이 정리된 『강원의 전통 민속예술』과 『철원군지』에는 후렴이 빠져 있다. 그 대신에 『증편한국구비문학대계』에 「밭 일구는 소리」, 곧 「땅 파기 농요」의 후렴이 “쇠뿔 같은 괭이를 들고”로 채록되어 있다. 『철원군지』에 정리된 내용을 보면, 「땅 파기 농요」는 “쇠뿔 같은 괭이를 들고/ 화전밭은 팔 적에/ 일천 기러기 나는 듯이/ 일심협력 잘도 판다/ 올려 파고 내려 파고/ 내 파고 돌여 팔 제/ 이 골짜기도 다 파 놓고/ 저 골짜기도 다 파 놓고/ 농부가를 불러 보며/ 힘있게 잘도 판다/ 여보시오 농군님네들/ 이네 말씀 들어 보소.”이다. 이어지는 「씨 뿌리기 농요」는 “콩 농사를 지어를 보자/ 어떤 콩씨를 심었더냐/ 식전 아침에 안개 무지요/ 아롱다롱에 새알콩/ 방정맞다 쥐눈이콩이요/ 독수공방 홀애비콩이요/ 만리 타국에 강남콩이요/ 이팔청춘 춘푸르대콩을/ 여기저기 다 심었더니야/ 오복소복이도 잘되었구나.”이고, 「김매기 농요」는 “오늘날은 여기서 놀고/ 내일날은 어디 가 노나/ 오늘 해가 다 갔는지/ 골골마다 그늘일세/ 해가 져서 그늘인가/ 산이 높아 그늘일세/ 오늘날은 여기서 놀고/ 내일날은 어디 가 노나”이며, 「콩 거두기 농요」는 “노[오]뉴월이 지나가고/ 칠팔월이 당도하여/ 가을 추 자 접어드니/ 이 골 저 골 다 깎아서/ 이 골 저 골에 널어 놓고/ 범 같은 비부 놈은/ 멜빵 걸어 져들이고/ 앵무 같은 저한임[하님]은나/ 똬리 받쳐 여들이고/ 아서라 그래 못 쓰겠다우/ 마등에나 실어 보자/ 우거뿔이 잡답뿔이/ 노기거리 별맥이/ 쌍쌍 굴러라 사족바/ 꽁지 없는 동경소요/ 나갈 적에는 빈 바리요/ 여기로다 여기다 놓으니/ 여기 것도 노적이요/ 저기로다 저기다 놓으니/ 저기 것도 노적이라/ 앞노적 뒷노적 담뿍 담뿍이 노적이라.”이다.
[현황]
전통적으로 전하여 오던 전국의 노동요 대부분은 20세기 후반 급격한 현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전승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철원화전농요도 그러하다. 게다가 철원화전농요는 애초에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승되는 노래가 아니었고,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고자 기존에 전하여 오던 여러 노래를 재구성한 것으로 보이므로, 전승의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다. 철원화전농요로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한 당시의 출연진이나 철원화전농요의 기능을 보유한 이들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의의와 평가]
철원화전농요는 지역에서 탄탄하게 전승되어 오던 노래가 아니라 대회 참여를 위하여 재구성한 노래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화전을 많이 하던 지역적 환경을 고려하여 노래를 구성하였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를 계기로 강원도에서 화전민이 크게 늘어났는데, 당시 생계 유지를 위하여 주인 없는 두메산골로 찾아들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 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