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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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Sipjinbeol |
이칭/별칭 | 장경리벌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77년 - 「십진벌」 문화재보호협회 철원군지부에서 발행한 『향토지-철원, 김화, 평강』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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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십진벌」 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지』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0년 - 「십진벌」 철원문화원에서 발행한 『철원향토지』에 수록 |
관련 지명 | 십진벌 -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리 |
성격 | 설화|전설 |
[정의]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리와 근남면에서 십진벌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십진벌」은 강원도 철원군에서 십진벌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십진벌에서 진천장씨(鎭川張氏)가 역적모의하던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하여 풍암천(豊巖川)에 보를 막았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십진벌」은 1977년에 문화재보호협회 철원군지부에서 발행한 『향토지-철원, 김화, 평강』와 1992년에 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지』, 2000년에 철원문화원에서 발행한 『철원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철원군 서면 와수리에서 근남면 벌판을 지나 김화읍 방면으로 펼쳐진 벌판을 십진벌[장경리벌]이라 부른다. 십진벌이 있는 지역은 오래전부터 진천장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당시는 조정(朝庭) 및 관리들의 부패가 심하였던 시절이라, 전국에 있는 진천장씨 문중의 젊은이들을 모아 역적모의를 준비하였다. 십진벌에는 투석용 돌을 모아 놓고 진천장씨 젊은이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 역적모의 사실을 알고 관찰사를 보내 조사하였다. 진천장씨는 역적모의하였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하여 투석용 돌을 동교산 옆을 흐르는 풍암천에 보를 막기 위한 돌이라고 둘러대었다. 그 후 풍암천에 보를 막아 개답이 이루어져 결국 100여 석의 벼를 수확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십진벌」은 ‘역적모의를 준비하던 진천장씨’를 기본 모티프로 하고 있다. 진천장씨 문중에서 역적모의를 준비하였으나 발각이 되어, 훈련용으로 쌓아 둔 돌로 풍암천의 보를 쌓았다는 것이다. 한편 철원군에서 발행한 『향토지-철원, 김화, 평강』에는 장씨가 아니라 신씨 문중이라 기록되어 있다. “신씨 문중의 한 장수가 유언을 남겼는데, 와우형(臥牛型) 마을 뒷산에 다리가 산봉우리 쪽으로 향하게 하여 깊이 묻어 달라고 하였다. 역적모의가 발각되고 나서 신 장수가 묻힌 묘까지 파헤치게 되었는데, 신 장수 사체의 반은 용이 되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꺼내 기름 가마에 넣어 끓여 죽였다고 한다.”라고 하며 역적모의의 실패를 신 장수의 무덤과 연계하고 있다. 실패한 영웅 이야기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모티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