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774
한자 金淇昊
영어공식명칭 Kim Gih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원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4년연표보기 - 김기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김기호 김화에서 농기계공장 설립
몰년 시기/일시 1989년연표보기 - 김기호 사망
출생지 서울 - 서울특별시
거주|이주지 용양리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용양리 지도보기
활동지 김화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지도보기
성격 기업인
성별

[정의]

6·25전쟁 이후 강원도 철원 지역 재건에 기여한 기업인.

[활동 사항]

김기호(金淇昊)[1904~198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190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20년 가족들과 함께 지금의 철원군 김화읍 용양리로 이주하였다. 김화읍으로 이주하여 정미소와 양봉업 등에 종사하던 김기호는 철원군 일대에서 농경지 확대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가족과 함께 농기계를 만드는 공장을 설립하였다. 당시 청년이던 김기호는 가족이 운영하는 농기계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였는데, 당시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보습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한다.

김기호는 공장 운영과 더불어 상업은행을 설립하여 굶주린 이웃들의 구제에도 힘썼지만, 1944년 태평양전쟁으로 쇠를 징발당하면서 호황을 누리던 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 6·25전쟁 때는 부산과 서울에서 피난 생활을 하였으며, 휴전협정 체결 뒤 철원 지역이 수복되자 철원군 서면 와수리로 돌아와 정착하였다.

김기호는 철원에 거주하면서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 힘썼으며, 군 사단장을 설득하여 주민들이 군으로부터 의식주와 농경지 문제 등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하였다. 또한 학교 건물이 없어서 천막 교실을 전전하며 수업하던 와수국민학교[현 와수초등학교]의 정착을 위하여 김기호는 부지 5,000여 평[1만 6,529㎡]을 내놓고 도교육청에 교사 건립을 신청하여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등 지역 재건에 기여하였다. 김기호는 1989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기호의 공적을 기려 지역 주민들이 쌀을 걷어 송덕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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