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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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敬三 |
영어공식명칭 | Kim Kyungsa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원희 |
출생 시기/일시 | 1876년 - 김경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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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1일 - 김경삼 갈말읍 3·1운동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8일 - 김경삼 경성지방법원에서 태 90도 언도 |
추모 시기/일시 | 2007년 - 김경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 수훈 |
출생지 | 문혜리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
거주|이주지 | 문혜리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
활동지 | 갈말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경삼(金敬三)[1876~?]은 1876년 지금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태어났다. 갈말면[현 갈말읍]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문혜리 서당 훈장이던 신성규(申聖奎)와 당시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칠룡(金七龍)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신성규와 김칠룡이 연락을 취하자 문혜리의 김경삼·김순복(金順福)·김상보(金相保)·전사진(全士進)·김학길(金學吉)·김경복(金敬福), 동막리의 윤호병(尹浩炳), 내대리의 임낙호(任洛鎬), 토성리의 황철성(黃徹性) 등이 적극 동조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청양리 헌병 주재소 앞에 모인 김경삼을 비롯한 8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윤호병과 임낙호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오후 1시경 시위대는 태극기를 휘두르며 행진하여 문혜리에서 주민들과 합세한 후 면사무소로 가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모두 도망쳤고 어두워지자 숨어 있던 면장 황희수가 나타나 군중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시위 군중은 밤이 깊어도 돌아갈 줄 모르고 쌓였던 울분을 터뜨려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면장의 권유로 해산하였다.
김경삼은 이날 시위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고,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태 90도를 언도받았다.
[상훈과 추모]
2007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경삼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