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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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大呂 |
영어공식명칭 | Kang Daerye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엄찬호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9월 24일 - 강대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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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8월 11일 - 강대려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 결성에 참여하여 서무과장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0월 10일 - 강대려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 주도로 철원읍에서 상해 통합 임시정부 수립 축하 만세시위 진행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강대려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 조직이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검거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12월 23일 - 강대려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59년 12월 02일 - 강대려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강대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 수훈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강대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출생지 | 중리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 |
거주|이주지 | 중리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 |
활동지 | 철원 - 강원도 철원군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 서무과장|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 서무국장 |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강대려(姜大呂)[1889~1959]는 일제 강점기 철원에서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大韓獨立愛國團鐵原郡團) 창단에 참여하고 간부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강대려는 1889년 9월 24일 철원에서 태어났다. 1919년 8월 9일 서울에서 내려온 김재근(金載根)으로부터 대한독립애국단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듣고 김철회(金喆會)·박연서(朴淵瑞)·박건병(朴健秉) 등과 함께 이에 동의하였다. 이틀 뒤인 8월 11일 철원군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김철회·박연서·박건병·이봉하(李鳳夏)·김완호(金完鎬)·오세덕(吳世德)·김상덕(金相德) 등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을 결성하고 서무과장 직책을 맡았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의 주도로 결성된 뒤 강원도·충청도·전라도 등지에 도단(道團)을 설치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국내의 조직망을 바탕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선전 활동과 군자금 조달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연통부(聯通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은 철원군단이 발전하여 승격하였으며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전국의 도단 가운데서도 가장 활동이 활발하였고 규모도 컸다. 강대려는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의 서무국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20일 강대려 등은 상해임시정부 특파원 신상완(申尙玩)으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축하 독립 만세 시위 계획을 전달받고 시위를 추진하고 주관하였다. 강대려는 「대한민국 통합 임시정부 수립 축하 선언서」를 인쇄하고 서울에서 보내 온 태극기 및 만국기 등을 배포하였다. 이후 1919년 10월 10일 오후 8시 철원읍 우시장에서 이용우 등의 단원들이 임시정부 수립 축하 연설을 가진 데 이어 태극기를 게양하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1920년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 조직이 발각되어 강대려는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고,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59년 12월 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강대려의 공적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