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681 |
---|---|
한자 | 鄭莫今 |
영어공식명칭 | Jeong Makgeum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성주 |
몰년 시기/일시 | 1636년 - 정막금 사망 |
---|---|
추모 시기/일시 | 1644년 - 정막금 열녀각 건립 |
거주|이주지 | 도창리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 |
사당|배향지 | 정열부인 영평정씨 열녀문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정의]
조선 후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열녀
[가계]
정막금(鄭莫今)[?~1636]의 본관은 영평(永平)이며, 조선 후기 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에 살고 있던 김명천(金明天)의 아내이다. 남편 김명천은 병자호란 때 기병(騎兵)으로 종군하고 있었다.
[활동 사항]
1636년(인조 14) 청나라 군대가 침입하여 김화읍 자모산성(慈母山城)을 함락시키고 한양으로 진군하던 중 도창리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청나라 군사들이 마을에 들어오자 정막금과 시어머니는 어린 세 자녀를 데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삼신산(三申山) 골짜기로 피신하였다.
정막금은 간직하던 불씨를 꺼뜨리는 바람에 마을로 내려와 불씨를 구하려 하였으나 이미 청나라 군이 민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정막금은 궁리 끝에 치마끈에 불을 붙였고, 헝겊 타는 냄새를 수상히 여긴 청나라 군사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청나라 군사들은 젊은 정막금을 발견하자 겁탈하려고 덤벼들었고, 정막금은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혀를 깨물고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1644년 조정에서는 정막금의 절개와 열녀 행적을 정려(旌閭)하고 열녀각을 세워 기리도록 하였다. 열녀각은 지역 유림과 후손들에 의해 도창리 마을 어귀에 세워졌고,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후손들이 잘 보존하였으나 6·25전쟁 때 중공군들이 침입하여 자기 선조들의 만행이 기록된 것을 보고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