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치하 토지개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458
한자 北韓地域土地改革
영어공식명칭 Land Reform
이칭/별칭 토지재분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6년 03월 05일연표보기 - 북한 지역 토지개혁 실시
발생|시작 장소 북한 토지개혁 - 강원도 철원군

[정의]

1946년 3월 5일 북한 지역에서 단행되었던 토지 재분배 조치.

[개설]

북한 지역에서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에 입각하여 토지 재분배가 이루어졌다. 소작을 주지 않고 자작하는 농민의 토지[자작지]는 3정보[약 2만 9752㎡, 9,000평]까지 몰수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정하여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리하여 철원 지역에서도 1946년 3월 5일을 기하여 토지개혁이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다.

[역사적 배경]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38선 이북인 철원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고 인민위원회가 설치되어 공산 치하가 되었다. 북한 정권이 점령 정책에서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이 토지개혁이었다. 북한에서는 1946년 1월 31일 농민연맹이 결성되고 3월 3일 대표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토지개혁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였다.

첫째 일제 시대 확립한 토지 등기제도를 폐지하고 일제 시대 발급한 토지대장을 모두 회수할 것, 둘째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여 고용노동자, 토지 없는 농민, 토지가 적은 농민에게 무상분배할 것, 셋째 농민의 지주에 대한 부채 취소, 넷째 관개시설·산림 등을 몰수하여 국유화할 것 등이었다.

[경과]

철원 지역에서도 1946년 3월 5일 전격적인 토지개혁이 실시되었다. 1차, 2차, 3차로 숙청을 하였고 토지개혁법에 의해 3정보 이상 되는 것은 몰수를 하였는데 초창기에는 자기 자작하였던 3정보 이하 사람들은 묵인하였다. 지주의 토지를 3정보 이상은 몰수하여 머슴과 소작인들에 우선 분배하고 그 나머지 토지는 토지 없는 사람들에게 균형 분배하였다. 당시 3정보 이상 몰수 추방자는 이길리에 2가구, 양지리에는 5가구 정도 되었다. 토지는 물론이고 가옥하고 자재도구 일체 등 모든 재산을 완전히 몰수하여 일단은 해당 토지를 소작하던 사람들이 분배받았다. 이길리 몰수 토지는 이길리 사람들한테 양지리 몰수 토지는 양지리 사람들한테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결과]

북한 정부에서는 토지개혁을 할 때 3정보 이상의 토지 소유자를 형사입건하였고 이를 피하여 월남하는 사람들이 발생하였다. 토지는 모두 몰수하여 국유화하고 소작인들에게 무상분배하여 경작권을 부여하였는데, 전 경지의 50%에 달하는 면적이 소작농과 빈농 등에게 분배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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