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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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朔寧誌 |
영어공식명칭 | Town Chronicle of Sangnyeong-gu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나종현 |
[정의]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강원도 철원 지역의 읍지.
[개설]
『삭녕지』는 현재 강원도 철원군에 속하여 있는 예전 경기도 삭녕군 지역에 대한 읍지로서, 19세기 후반에 작성되었다. 삭녕군은 경기도 연천군 북서부를 차지하고 있던 옛 행정 구역이며,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철원군과 경기도 연천군에 나뉘어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저자]
『삭녕지』는 19세기 후반 당시 삭녕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나, 저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편찬/간행 경위]
『삭녕지』의 편찬 경위와 시기를 명확하게 보여 주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19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각 지역의 인문 지리 정보를 파악하고자 많은 읍지류가 작성되었고, 『삭녕지』 또한 비슷한 목적에서 지역 정보의 파악·수록을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삭녕지』의 체제와 내용을 보면 1871년의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삭녕 지역 읍지와 가장 비슷하다. 대체로 삭녕 지역의 19세기 후반 상황을 반영하여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서지]
『삭녕지』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총 세 종이 전해지는데, 각각 불분권 1책 7장, 불분권 1책 6장, 불분권 1책 6장의 필사본이다. 서지적으로 차이가 있으나, 내용은 같은 것으로 파악된다.
[구성/내용]
『삭녕지』 세 종은 구성과 내용이 대체로 유사하다. 서두에 주변 군현, 서울까지의 거리를 기재하였고 방리(坊里), 도로(道路),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山川), 성씨(姓氏), 풍속(風俗), 능침(陵寢), 사찰(寺刹), 고적(古跡), 진보(鎭堡), 인물(人物), 전답(田畓),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등의 항목이 이어진다. 당시의 기록으로는 삭녕에서 서울까지가 7식(息)[1식은 30리로, 약 12㎞] 정도의 여정이었다.
[의의와 평가]
『삭녕지』는 철원 지역의 19세기 중반 인문 지리 정보를 수록한 자료이다. 다른 읍지와 비교하면 내용이 비록 간략한 편이지만, 역사 지리, 문화, 환경, 사회경제 등 여러 방면으로 지역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