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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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由淵 |
영어공식명칭 | Park Yuyeon |
이칭/별칭 | 약기(躍起),일재(逸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진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 거주하였던 의술이 뛰어난 학자.
[개설]
박유연(朴由淵)은 현종 대에 활약한 학자로 아버지 박지계(朴知誡)의 영향을 받아 학문이 넓었으며, 의술(醫術)에 밝았다.
[가계]
박유연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약기(躍起)이며, 호는 일재(逸齋)이다. 아버지는 승지(承旨)를 지낸 박지계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유간(李惟侃)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유연은 일찍부터 아산에 거주하며 벼슬에 뜻이 없었으나 의술이 뛰어나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현종이 편찮을 적에 박유연을 부르자는 논의가 있었다. 임금의 주치의인 어의(御醫)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른 이유는 박유연의 의술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박유연은 『현종실록』에만 두 번 등장한다. 1659년(현종 즉위년) 8월 22일과 8월 24일에 박유연이 의술이 뛰어나다는 간단한 내용이 발견된다. 당시 박유연의 직책은 전(前) 주부(主簿)라고 하였다. 주부는 종6품이므로 박유연은 벼슬에 큰 뜻이 없었다고 여겨진다.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8월 22일에는 "약방(藥房)이 의관을 거느리고 들어와 진찰하였다. 도제조(都提調) 정태화(鄭太和)가 전 주부 박유연, 전 참봉 정유악(鄭維岳)이 모두 의술을 안다 하여, 그들에게 군직(軍職)을 주어 약을 논의하는 데 동참하게 할 것을 청하였는데, 이때 유연은 외지에 있었고 유악은 서울에 있었으므로, 상이 유악에게만 직을 주도록 허락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8월 24일에는 "약방이 아뢴 대로 박유연을 불러오게 하고 신응제(愼應悌)와 같은 사람들도 모두 불러들여 약을 논의하는 데 참여하게 할 것을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의술이 출중하지 않으면 불러온들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하였다. 네 차례나 아뢰었으나 따르지 않았다. 유연은 고(故) 승지 박지계의 아들이고 응제는 영남 청도 사람인데, 다 의술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었다."라고 쓰여 있다.